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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8-02 04:47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25-33장)
 글쓴이 : 작은자
조회 : 2,028  
제25장 교회(敎會)

1. 무형적(無形的) 교회(敎會)
 보편적(普遍的) 또는 우주적(宇宙的) 교회(敎會)는 무형적(無形的)이다. 그 교회(敎會)는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를 중심(中心)으로 하여 그 아래 하나로 지금까지 모여들었고, 지금 모여들고 있고, 장차 모여들게 되는 택(擇)함을 받은 모든 사람들로 구성(構成)된다. 이 교회(敎會)는 그리스도의 신부(新婦)이며, 몸이며, 만물(萬物) 안에서 만물(萬物)을 충만(充滿)하게 하시는 그의 충만(充滿)이다(엡 1:10,22,23; 5:23,27,32; 골 1:18).

2. 유형적(有形的) 교회(敎會)
 유형(有形) 교회(敎會)도 복음(福音) 아래서는 보편적(普遍的)이요 공동적(共同的)인 교회(敎會)이다(이전 율법(律法) 시대(時代)처럼 한 민족(民族)에게만 제한(制限)되어 있지 않다). 이 유형 교회(有形敎會)는 전(全) 세계적(世界的)으로 참 종교(宗敎)를 신봉(信奉)하는 모든 사람들과(고전 1:2; 12:12,13; 시 2:8; 계 7:9; 롬 15:9-12) 그들의 자녀(子女)들로 구성(構成)되어 있다(고전 7:14; 행 2:39; 겔 16:20,21; 롬 11:16; 창 3:15; 17:7). 그리고 이 교회(敎會)는 주(主) 예수(耶蘇) 그리스도(基督)의 왕국(王國)이며, 하나님의 집이며, 권속(眷屬)이다. 이 교회(敎會)를 떠나서는 즉, 교회(敎會) 밖에는 통상적(通常的)으로 결코 구원(救援)받을 수가 없다(행 2:47).

3. 사역자(使役者)들과 규례(規例)들
 이 보편적(普遍的)인 유형(有形) 교회(敎會)에서 세상(世上) 끝날까지 이 세상에서 성도(聖徒)들을 모으는 일과 온전(穩全)케 하는 일을 위(爲)하여 그리스도(基督)께서는 하나님의 성직(聖職)과 성경(聖經)과 성례(聖禮)를 제정(制定)해 주셨다. 그리고 그의 약속(約束)을 따라, 그 자신(自身)의 임재(臨齋)하심과 또 성령(聖靈)으로 말미암아 성도(聖徒)들이 효과적(效果的)으로 모아지며 온전(穩全)케 되는 것이다(고전 12:28; 엡 4:11-13; 마 28:19-20; 사 59:21).

4. 유형성(有形性)과 순결성(純潔性)의 정도(程度)
 이 보편적(普遍的) 교회(敎會)는 때로는 더 쉽게 볼 수도 있고 때로는 보기가 더 어렵기도 하다(롬 11:3,4; 계 12:6,14). 그 보편적(普遍的) 교회(敎會)에 속(屬)하는 개(個) 교회(敎會)들은 그들 안에서 복음(福音)의 교리(敎理)를 가르치고 받드는데 따라, 성례(聖禮)가 시행(施行)되고, 공동(共同) 예배(禮拜)를 순수(純粹)하게 행(行)하고 안 하고에 따라 더 순수((純粹)하기도 하고 덜 순수(純粹)하게도 되는 것이다(계 2; 3; 고전 5:6,7).

5. 연약성(軟弱性)과 불멸성(不滅性)
 지상(地上)에서는 아무리 순수(純粹)한 교회(敎會)들일지라도 혼잡(混雜)함과 과오(過誤)를 범(氾)한다(고전 13:12; 계 2:3; 마 13:24,30,47). 그리고 어떤 교회(敎會)들은 극도(極度)로 타락(墮落)하여 그리스도(基督)의 교회(敎會)가 아니라, 사탄(Satan)의 공회당(公會堂)이 되기도 한다(계 18:2; 롬 11:18-22). 그렇지만 지상(地上)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에게 예배(禮拜)드리는 교회(敎會)가 있을 것이다(마 16:18; 시 72:17; 102:28; 마 28:19,20).

6. 교회(敎會)의 머리
 주(主) 예수(耶蘇) 그리스도(基督) 외(外)에는 교회(敎會)의 머리되시는 분이 달리 아무도 없다(골 1:18; 엡 1:22). 그렇기 때문에 로마의 교황(敎皇) 역시 어떠한 의미(意味)에서든지 교회(敎會)의 머리가 될 수 없다. 교황(敎皇)은 교회(敎會) 안에서 그리스도(基督) 및 범사(凡事)에 일컫는 하나님에 비(比)하여 자신(自身)을 높이는 적(摘)그리스도(基督)요, 불법(不法)의 사람 곧 멸망(滅亡)의 아들(子)이다(마 23:8-10; 살후 2:3,4,8,9; 계 13:6).

[주(主) 예수(耶蘇) 그리스도(基督)는 교회(敎會)의 유일(唯一)한 머리이시니, 누구든지 자기(自己)가 그리스도(基督)의 대리자(代理者)요 교회(敎會)의 머리라는 주장(主張)은 비성경적(非聖經的)이며, 사실(事實)상 정당(正當)한 이유(理由)가 없으며, 주(主) 예수(耶蘇) 그리스도(基督)를 모욕(侮辱)하는 강탈행위(强奪行爲 a usurpation)이다.] 이상(以上)의 내용(內容)은 미국(美國) 장로교회(長老敎會)에서 수정(修正)한 본문(本文)임.


      제26장 성도(聖徒)의 교통(交通)

1.  일반적(一般的) 진술(陳述)
 머리되시는 예수(耶蘇) 그리스도(基督)에게 성령(聖靈)과 믿음으로 말미암아 연합(聯合)되어 있는 모든 성도(聖徒)들은 그의 은혜(恩惠)와 고난(苦難)과 죽음과 부활(復活)과 영광(榮光)안에서 그와 교제(交際)를 갖는다(요일 1:3; 엡 3:16-19; 요 1:16; 엡 2:5,6; 빌 3:10; 롬 6:5,6; 딤후 2:12). 그리고 성도(聖徒)들은 사랑(愛) 안에서 서로 연합(聯合)되어 있는 까닭에, 각자(各者)가 받은 은사(恩賜)와 은혜(恩惠)안에서 교통(交通)한다(엡 4:15,16; 고전 12:7; 3:21-23; 골 2:19). 또한 피차 덕(德)을 세워 사람에게 안팎으로 유익(有益)되게 하는 의무(義務)들을 공적(公的)으로나 사적(私的)으로 행(行)해야 하는 것이다(살전 5:11,14; 롬 1:11,12,14; 요일 3:16-18; 갈 6:10).

2. 교제(交際) 방법(方法)
 공적(公的)으로 성도(聖徒)라고 고백(告白)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예배(禮拜)하는 일과, 그들 상호간(相互間)에 덕(德)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는 다른 신령(神靈)한 봉사(奉仕)를 하는 일과, 또한 그들의 각양(各量)의 능력(能力)과 필요(必要)에 따라 물질(物質)로 서로 도와주는 일에 있어서, 거룩한 교제(交際)와 교통(交通)을 유지(維持)해야 한다(히 10:24,25; 행 2:42,26; 사 2:3; 고전 11:20). 이 같은 성도(聖徒)들의 교통(交通)은, 하나님께서 기회(期會)를 주시는 대로 어디에서나 주(主) 예수(耶蘇)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어져야 하는 것이다(행 2:44,45; 요일 3:17; 고후 8:9; 행 11:29,30).

3. 오해(誤解)하지 말아야 할 점(點)들
 성도(聖徒)들이 그리스도(基督)와 더불어 갖는 이 교통(交通)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그리스도의 신격(神格)의 본체(本體)를 소유(所有)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어느 면에서든지 그리스도(基督)와 동등(同等)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이들 중(中)에 어느 하나라도 긍정(肯定)한다면 그것은 불경건(不敬虔)하고 신성(神性) 모독적(冒瀆的)인 것이 된다(골 1:18,19; 고전 8:6; 사 42:8; 딤전 6:15,16; 시 45:7; 히 1:8,9). 또한 성도(聖徒)들 상호간(相互間)에 갖는 교통(交通)으로 말미암아, 각자(各者)가 갖고 있는 물건(物件)이나 재산(財産)의 소유권(所有權)이 상실(喪失)되거나 결코 침해(侵害)되는 것은 아니다(출 20:15; 엡 4:28; 행 5:4).


      제27장 성례(聖禮)

1. 의미(意味)
 성례(聖禮)는 은혜(恩惠) 언약(言約)에 대한 거룩한 표호(慓號)요 인호(印號)이다(롬 4:11; 창 17:7,10). 그것은 하나님이 직접(直接) 제정(制定)하셨는데(마 28:19; 고전 11:23), 이는 그리스도(基督)와 그가 주시는 은혜(恩惠)를 나타내고 그 안에서 우리가 받는 유익(有益)을 확증(確證)하며(고전 10:16; 11:25,26; 갈 3:27,17), 교회(敎會)에 속(屬)한 사람들과 세상(世上)에 속(屬)한 나머지 사람들을 볼 수 있게 구별(區別)하며(롬 15:8; 출 12:48; 창 34:14), 교회(敎會)에 속(屬)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리스도(基督) 안에서 하나님께 예배(禮拜) 드리는 일에 엄숙(嚴肅)하게 참예(參詣)하도록 하기 위(爲)함이다(롬 6:3,4; 고전 16:21).

2. 성례적(象徵的) 연합(聯合)
 매(每) 성례(聖禮)마다 그 표호(標號)와 그 표호(標號)에 의(依)해 의미(意味)되는 것 사이에는 영적(靈的)인 관계(關係), 즉, 성례전적(聖禮典的)인 상징적(象徵的) 연합(聯合)이 있다. 그러기에 그 표호(標號)의 명칭(名稱)들과 효과(效果)들은 그 표호(標號)에 의(依)해 의미(意味)되는 것으로부터 나오게 되는 것이다(창 17:10; 마 26:27,28; 딛 3:5).

3. 효력(效力)
 성례전(成禮典)이 올바르게 집행(執行)되는 때에, 그 성례(聖禮)들을 통(通)하여 나타나는 은혜(恩惠)는 그것들 안에 있는 어떤 힘에 의(依)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또한 성례(聖禮)의 효력(效力)은 그것을 집행(執行)하는 자(者)의 경건(敬虔)이나 의사(意思)에 좌우(左右)되지 않고(롬 2:28,29; 벧전 3:21), 성령(聖靈)의 사역(使役)과(마 3:11; 고전 12:13), 그 성례(聖禮)에 관(關)한 말씀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말씀에는 성례(聖禮)를 집행(執行)하는 권한(權限)을 부여(附與)하는 명령(命令)과 함께, 합당(合當)하게 성례(聖禮)를 받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은혜(恩惠)에 대한 약속(約束)이 포함(包含)되어 있다(마 26:27,28; 28:19,20).

신약(新約)의 성례(聖禮)들
4. 그리스도(基督) 우리 주(主)께서 복음서(福音書)에서 제정(制定)해 놓으신 성례(聖禮)는 두(二) 가지뿐이니 곧 세례(洗禮)와 성찬(聖餐)이다. 이 중(中)에 어느 것도 합법적(合法的)으로 안수(按手)를 받은,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使役者)인 목사(牧師) 외(外)에는 아무도 집행(執行)할 수가 없다(마 28:19; 고전 11:20,23; 4:1; 히 5:4).

구약(舊約)의 성례(聖禮)들
5. 구약(舊約)의 성례(聖禮)들이 상징(象徵)하고 표현(表現)하는 영적(靈的)인 뜻은 본질적(本質的)으로, 신약(新約)의 성례(聖禮)와 동일(同一)하다(고전 10:1-4).


      제28장 세례(洗禮)

1. 의미(意味)
 세례(洗禮)는 예수(耶蘇) 그리스도(基督)께서 제정(制定)하신 신약(新約)의 성례(聖禮)로서(마 28:19; 막 16:16), 세례(洗禮) 받은 당사자(當事者)를 유형(有形) 교회(敎會)에 엄숙(嚴肅)하게 가입(加入)시키는 것을 뜻할 뿐만 아니라(고전 12:13; 갈 3:27,28), 그 당사자(當事者)에게는 은혜 언약(恩惠言約)의 표호(標號)와 인호(認號)가 되며(롬 4:11; 골 2:11,12), 그가 예수(耶蘇) 그리스도(基督)에게 접(接)붙임을 받고(갈 3:27; 롬 6:50) 중생(重生)하고(딛 3:5) 죄(罪)를 사(赦)함 받고(행 2:38; 22:16; 막 1:4), 예수(耶蘇) 그리스도(基督)를 통(通)하여 새 생명(生命) 가운데서 행(行)하기로 하나님께 헌신(獻身)하는(롬 6:3,4) 표호(標號)요 인호(認號)이다. 이 성례(聖禮)는 그리스도(基督) 자신(自身)이 친(親)히 명(命)하신 것이기에 세상(世上) 끝 날까지 그의 교회(敎會) 안에서 계속 집행(執行)되어야 하는 것이다(마 28:19,20).

2. 세례(洗禮) 방법(方法)
 이 성례(聖禮)에 사용(使用)되어야 하는 외형적(外形的)인 요소(要素)는 물(水)이며, 이 물을 가지고 성부(聖父)와 성자(聖子)와 성령(聖靈)의 이름으로 세례(洗禮)를 주되, 합법적(合法的)으로 부르심을 입은 복음(福音)의 사역자(使役者)인 목사(牧師)에 의(依)해서만 집례(執禮)되어야 한다(마 3:11; 요 1:33; 마 28:19,20).

3. 침수(浸水) 문제(問題)
 세례(洗禮) 받는 사람을 물(水) 속에 반드시 잠기(沈水)게 할 필요(必要)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 사람 머리 위에 물을 붓거나 뿌려서 세례(洗禮)를 집행(執行)하여도 무방(無妨)하다(히 9:10,19-22; 행 2:41; 16:33; 막 7:4).

4. 세례(洗禮) 대상(對象)
 그리스도(基督)에 대(對)하여 신앙(信仰)과 순종(順從)을 실제(實際)로 고백(告白)한 사람들뿐만 아니라(막 16:15,16; 행 8:37;38), 양친(兩親)이 다 믿거나 어느 한편(一偏)만 믿는 집의 유아(幼兒)들도 세례(洗禮)를 받을 수 있다(창 17:7,9; 갈 3:9,14; 골 2:11,12; 행 2:38,39; 롬 4:11,12; 고전 7:14; 마 28:19; 막 10:13-16; 눅 18:15).

5. 세례(洗禮)와 구원(救援)
 이 의식(儀式)을 모독(冒瀆)하거나 무시(無視)하는 것은 커다란 죄(罪)가 된다(눅 7:30; 출 4:24,26). 그렇지만 세례(洗禮)를 안 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중생(重生)할 수 없다거나 구원(救援)을 못 받는 다든가(롬 4:11; 행 10:2,4,22,31,45,47), 또는 세례(洗禮)를 받은 사람은 모두 의심(疑心)할 여지없이 중생(重生)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행 8:13,23) 세례(洗禮) 의식(儀式)에 은혜(恩惠)와 구원(救援)이 불가분(不可分)하게 속(屬)해 있는 것은 아니다.

6. 세례(洗禮)의 효력(效力)
 세례(洗禮)의 효력(效力)은 그것이 집행(執行)되는 그 순간(瞬間)에 꼭 발생(發生)되는 것은 아니다(요 3:5,8). 그럼에도 불구(不具)하고, 이 의식(儀式)을 옳게 집행(執行)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정(定)해 놓으신 때에, 하나님 자신(自身)의 뜻하신 바 계획(計劃)을 따라서 약속(約束)된 은혜(恩惠)를 받도록 되어 있는 사람(어른(成人)이든 유아(幼兒)이든)에게 성령(聖靈)으로 말미암아 그 은혜(恩惠)가 제공(提供)될 뿐만 아니라, 또한 실제(實際)로 나타나고 부여(附與)된다(갈 3:27; 딛 3:5; 엡 5:25,26; 행 2:38,41).

7. 세례(洗禮)의 횟수(回數)
 세례(洗禮) 의식(儀式)은 어떠한 사람에게든지 오직 한 번(一回)만 베풀어져야 하는 것이다(딛 3:5).


      제29장 성찬(聖餐)

1. 의미(意味)
 우리 주(主)님 예수(耶蘇)께서는 그가 잡히시던 날 밤에, 그의 몸(體)과 피(血)로 세우신 성례(聖禮), 곧 성찬(聖餐)을 제정(制定)하여, 그의 교회(敎會)에서 세상(世上) 끝 날까지 지키도록 하셨는데, 이는 그가 죽으심으로 자신(自身)을 친(親)히 희생(犧牲) 제물(祭物)로 드린 것을 영구(永久)히 기념(記念)케 하시고, 참 신자(信者)들에게 그 희생(犧牲)이 주는 모든 은혜(恩惠)들을 보증(保證)하시며, 그 안에서 그들이 영적(靈的)인 양식(糧食)을 먹고 성장(成長)케 하시며, 그들이 그에게 마땅히 행(行)해야 되는 의무(義務)들을 보다 충성(忠誠)스럽게 이행(履行)케 하시며, 그들이 그와 더불어 갖는 교통(交通)과 그의 신비(神秘)한 몸의 지체(肢體)들로서 그들 상호간(相互間)에 갖는 교통(交通)의 매는 줄과 보증(保證)이 되게 하시기 위(爲)함이다(고전 11:23-26; 10:16,17,21; 12:13).

2. 미사(黴橵 missa)의 잘못
 이 성찬(聖餐) 예식(禮式)을 행(行)할 때 그리스도(基督)께서 성부(聖父)에게 실제(實際)로 바쳐지거나, 또는 산(生) 자(者)와 죽(死)은 자(者)의 죄(罪) 사(赦)함을 위(爲)하여 희생(犧牲) 제물(祭物)이 실제(實際)로 드려지는 것도 아니다(히 9:22,25,26,28). 다만 이 성찬(聖餐) 예식(禮式)은 십자가상(十字架上)에서 단번에 스스로 자신(自身)을 드린 그 희생(犧牲)을 기념(記念)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모든 찬미(讚美)를 영적(靈的)으로 봉헌(奉獻)하는 것에 불과(不過)하다(고전 11:24-26; 마 26:26,27). 그러므로 카톨릭(天主) 교회(敎會)의 희생(犧牲) 제사(祭祀)인 소위 미사(黴橵)는 그리스도(基督)께서 선택자(選擇者)들의 모든 죄(罪)를 위(爲)한 유일(唯一)한 희생(犧牲) 제물(祭物)이 되시고 유일(唯一)한 화목(和睦) 제물(祭物)이 되신 것을 가장 극단적(極端的)으로 손상(損傷)시키는 것이 된다(히 7:23,24,27; 10:11,12,14,
18).

3. 성찬(聖餐)의 방식(方式)
 주(主) 예수(耶蘇)께서는, 이 의식(儀式)을 행(行)함에 있어서 그의 사역자(使役者)들을 택정(擇定)하시어 이 예식(禮式)에 대한 자신(自身)의 말씀을 일반(一般) 회중(會衆)에게 선포(宣布)케 하시고, 기도(祈禱)하게 하시며 떡과 포도주를 축사(祝辭)하게 하시고 그렇게 축사(祝辭)하여 그것들을 거룩하게 사용(使用)될 수 있도록 다른 일반(一般) 떡이나 포도주와 구별(區別)하게 하시고, 떡(餠)을 들어 떼게 하시고, 잔(盞)을 들게 하신 후(後)에 떡과 잔을 자신(自身)들이 나눌 뿐만 아니라) 수찬자(受餐者)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셨다(마 26:26-28; 막 14:22-24; 눅 22:19,20; 고전 11:23-26). 그러나 그 예식(禮式)이 거행(擧行)되는 시간(時間)에 회중(會衆) 가운데 참예(參詣)하지 않는 자(者)에게는 아무에게도 나누어 주지 못하게 하셨다(행 20:7; 고전 11:20).

4. 잘못(誤謬)된 사용(使用)들
 사적(私的)인 미사(missa), 즉 성례(聖禮)를 사제(司祭)나 기타(其他) 다른 사람에게서 혼자 받는다든지(고전 10:6), 또는 잔을 일반(一般) 회중(會衆)에게는 나누어 주지 않는다든지(막 14:23; 고전 11:25-29), 떡(餠)과 포도주(酒)에게 절(禮)을 한다거나 숭배(崇拜)할 목적(目的)으로 높이 치켜 들거나, 아니면 가지고 돌아다닌다거나, 혹은 겉치레만의 종교적(宗敎的)인 용도(用途)를 위(爲)하여 그것들을 남겨 두는 일이 있다고 하면 이 모든 것들은 이 예식(禮式)의 본질(本質)에 대(對)해서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基督)께서 이 예식(禮式)을 제정(制定)하신 본래(本來)의 뜻(儀)에도 어긋난다(마 15:9).

5. 그리스도(基督)와의 성례적(sacramental, 象徵的) 관계(關係)
 이 성례(聖禮)에 사용(使用)되는 외형적(外形的)인 요소(要素)들인 떡(餠)과 포도주(酒)는 그리스도(基督)께서 정(定)하신 용도(用途)를 위(爲)해 정당(正當)하게 구별(區別)되어 있는 까닭에 이 요소(要素)는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히신 그와 깊은 관계(關係)가 있다. 그 관계(關係)는 참된 것이지만 상징적(象徵的)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요소(要素)들은 때로는 그것들이 나타내고 있는 것들의 이름으로 불린다. 즉 그리스도(基督)의 몸(肉)과 피(血)로 불린다(마 26:26-28). 그렇다 해도 그것들은 실체(實體)와 본질(本質)에 있어서는 전(前)과 조금도 다름없이 떡(餠)과 포도주(酒)로만 여전(如前)히 남아 있는 것이다(고전 11:26-28; 마 26:29).

6. 화체설(化體說) 반박(反駁)
 신부(神父)가 축사(祝辭)하거나 또는 다른 방법(方法)을 통(通)해서 떡과 포도주의 실체(實體)가 그리스도(基督)의 몸과 피의 실체(實體)로 바뀐다고 하는 교리(敎理)(일반적(一般的)으로 '화체설'(化體設)이라고 불리운다.)는 성경(聖經)에 모순(矛盾)될 뿐만 아니라 일반(一般) 상식(常識)과 이성(理性)에도 모순(矛盾)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교리(敎理)는 성찬(聖餐)의 본질(本質)을 뒤엎는 것이요, 여러 가지의 미신(迷信)과 조잡(粗雜)한 우상(偶像) 숭배(崇拜)의 원인(原因)이 되어 왔고 지금도 그러한 요인(要因)이 되고 있다(행 3:21; 고전 11:24-26; 눅 24:6,39).

7.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는 방식(方式)
 합당(合當)한 수찬자(受餐者)들은 이 성례(聖禮)의 가견적(可見的) 요소(要素)를 외형적(外形的)으로 받을 때에(고전 11:28) 또한 내면적(內面的)으로는 믿음으로 받으며 물질적(物質的)으로나 신체적(身體的)으로가 아니라 영적(靈的)으로 십자가(十字架)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와 그의 죽음에서 오는 모든 은혜(恩惠)를 받으며 또한 먹는다. 그러나 성찬(聖餐)을 받는 그 때에 그리스도(基督)의 몸(育)과 피(血)가 떡(餠)과 포도주(酒) 안에 함께 또는 밑에, 물질적(物質的)으로나 육체적(肉體的)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루터교의 共在設). 그렇지만 그 가견적(可見的) 요소(要素)들을 그 의식(儀式)에 참예(參詣)하는 신자(信者)들이 그들의 외적(外的) 감각(感覺)에 의(依)해 알아보는 것처럼 실제적(實際的)인 동시(同時)에 영적(靈的)으로 그들은 그들의 믿음을 통(通)하여 그리스도(基督)의 몸(肉)과 피(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고전 10:16).

8. 합당(合當)치 못한 참여(參與)의 죄(罪)
 비록 무지(無知)하고 사악(邪惡)한 사람이 이 성례(聖禮)의 외적(外的) 요소(要素)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그 요소(要素)가 의미(意味)하는 바의 것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성례(聖禮)에 합당(合當)치 못하게 참예(參詣)함으로 해서 주(主)의 몸(肉)과 피(血)를 범(犯)하는 죄(罪)를 지어 자신(自身)의 파멸(破滅)을 자초(自招)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무지(無知)하고 불경건(不敬虔)한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도(基督)와 교통(交通)을 갖기에는 부적합(不適合)함으로 주(主)의 상(床)에 참여(參與)할 자격(資格)이 없으며, 그들이 무지(無知)하고 불경건(不敬虔)한 상태(狀態)에 있는데도 이 거룩한 성찬(聖餐) 예식(禮式)에 참여(參與)하거나(고전 11:2
7-29; 고후 6:14-16) 참여(參與)하는 것이 허락(許諾)되는 때에는(고전 5:6,7,13; 살후 3:6,14,
15; 마 7:6) 그리스도(基督)에 대(對)하여 큰 죄(大罪)를 반드시 짓게 되는 것이다.


      제30장 교회(敎會)의 권징(勸懲)

1. 다스리는 일(治理)
 교회(敎會)의 왕(王)이요 머리이신 주(主) 예수(耶蘇)께서는 세속(世俗)의 위정자(爲政者)와는 구별(區別)된 교회(敎會) 직원(職員)들의 손에 교회(敎會)의 정치(政治)를 제정(制定)해 주셨다(사 9:6,7; 딤전 5:17; 살전 5:12; 행 20:17,18; 히 13:7,17,24; 고전 12:28; 마 28:18-20).

2. 책벌(責罰)의 권세(權勢)
 이 직원(職員)들에게는 천국(天國)의 열쇠가 맡겨져 있다. 이 열쇠의 힘에 의(依)하여 그들은 말씀과 권징(勸懲)을 사용(使用)하여 죄(罪)를 보류(保留)시키기도 하고 용서(容恕)하기도 하며, 회개(悔改)치 않는 자(者)에게는 천국(天國) 문을 닫기도 하고 회개(悔改)하는 죄인(罪人)들에게는 복음(福音)을 전(傳)해주고 때에 따라 권징(勸懲)을 사면(赦免)해 줌으로써 천국(天國)문을 열어 주는 권세(權勢)를 가지고 있다(마 16:19; 18:17,18; 요 20:21-23; 고후 2:6-8).

3. 필요성(必要性)
 교회(敎會)의 권징(勸懲)이 필요(必要)한 것은 범죄(犯罪)한 형제(兄弟)들을 교정(矯正)하고 잃어버리지 않기 위(爲)함이요, 다른 사람들이 그 같은 범죄(犯罪)를 범(犯)하지 않도록 막기 위(爲)함이요, 전체(全體) 덩어리를 오염(汚染)시킬지도 모르는 누룩을 깨끗이 제거(除去)하기 위(爲)함이요, 그리스도(基督)의 명예(名譽)와 복음(福音)에 대(對)한 거룩한 고백(告白)을 옹호(擁護)하기 위(爲)함이요, 하나님의 진노(震怒)를 미연(未然)에 막기 위(爲)함이다(고전 5; 딤전 5:20; 마 7:6; 딤전 1:20; 고전 11:27-34; 유 2-3). 그런데 그리스도의 언약(言約)과 그 언약(言約)의 인(印)치심을 악명(惡名) 높고 완악(完惡)한 범죄자(犯罪者)들에 의(依)하여 더럽혀지는 것을 신자(信者)들이 묵인(黙認)하는 경우(境遇), 하나님의 진노(震怒)가 교회(敎會)에 당연(當然)히 임(臨)하게 되는 것이다.

4. 방법(方法)들
 이러한 목적(目的)들을 보다 효과적(效果的)으로 달성(達成)하기 위(爲)해 교회(敎會)의 직원(職員)들은 당사자(當事者)의 범죄(犯罪)와 과실(過失)의 성격(性格)에 따라서 권계(勸戒), 일시적(一時的)인 수찬(受餐) 정지(停止), 그리고 교회(敎會)에서의 제명(除名)을 행(行)할 수가 있다(살전 5:12; 살후 3:6,14,15; 고전 5:4,5,13; 마 18:17; 딛 3:10).


      제31장 대회(大會)와 협의회(協議會)에 관(關)하여

1. 필요성(必要性)과 근거(根據)
 더 나은 교회(敎會)의 정치(政治)와 건덕(健德)을 위(爲)해서는 일반적(一般的)으로 노회(老會)나 총회(總會)로 불리우는 모임들이 있어야 한다(행 15:2,4,6). 교회(敎會)의 감독자(監督者)들이나 개교회(個敎會)의 치리자(治理者)들은(長老) 교회(敎會)를 파괴(破壞)하는 것이 아니라 굳게 세우기 위(爲)해서 그리스도(基督)께서 주신 직책(職責)과 권한(權限)으로 이런 집회(集會)를 결정(決定)하며(행15), 교회(敎會)의 유익(有益)을 위(爲)해서 필요(必要)하다고 인정(認定)하는 대로 자주 소집(召集)할 책임(責任)이 있다(행 15:22-23, 25)

* [교회(敎會)의 더 나은 정치(政治)와 영적(靈的) 건립(建立)을 위(爲)해, 대회(大會)들 혹은 협의회(協議會)들이라고 보통(普通) 불리우는 모임들이 있어야 하며; 그러한 모임들을 설립(設立)하는 것과; 교회(敎會)의 유익(有益)을 위(爲)하여 필요(必要)하다고 판단(判斷)하는 만큼 자주 그것들로 모이는 것은, 그들의 직분(職分)과, 그리스도(基督)께서 파괴(破壞)를 위(爲)하지 않고 건립(建立)을 위(爲)하여 그들에게 주신 권세(權勢)에 따라서, 개(個) 교회(敎會)들의 감독(監督)들과 기타(其他) 다스리는(治理) 자(者)들에게 속(屬)한다.] 미국 장로교회(美國長老敎會)의 수정(修正)된 본문(本文)임

2. 국가(國家) 위정자(爲政者)들의 회의(會議) 소집(召集)
 노회(老會)와 총회(總會)는 신앙(信仰)에 대한 논쟁(論爭)과 양심(良心)에 대한 문제(問題)들을 확정(確定)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공예배(公禮拜)와 하나님의 교회(敎會)의 정치(政治)가 더욱 질서(秩序) 정연(整然)하도록 규칙(規則)과 지침(指針)을 정(定)하며 실책(失策) 있는 경우(境遇) 불평(不平)과 고소(告訴)를 접수(接受)하고 그 같은 것을 권위(權威)있게 결정(決定)하는 권한(權限)을 갖고 있다. 이렇게 해서 정(定)해진 명령(命令)이나 결의(決議) 사항(事項)은 만일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一致)하는 경우(境遇)는 그것들이 말씀과 일치(一致)되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그 결정(決定)을 내린 권한(權限) 즉, 말씀에서 정(定)해진 권한(權限)이기 때문에 경건(敬虔)하게 그리고 복종(服從)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이 정신(精神)이 역사적(歷史的) 장로교회(長老敎會)의 신앙고백(信仰告白) 정신(精神)이다)(행 15:15,19,24,27-31,16:4; 마 18:17
-20).

3. 처리(治理) 사항(事項)과 권위(權威)
 사도(使徒) 시대(時代) 이후(以後)로 모든 노회(老會)나 총회(總會)는 전체적(全體的)인 회의(會議)이든 아니면 개별적(個別的)인 회의(會議)이든 실수(失手)를 범(犯)할 수가 있으며 실지(實智)로 많은 회의(會議)에서 실수(失手)가 범(犯)해졌다. 그러므로 그 회의(會議)들을 신앙(信仰)이나 실제(實際) 생활(生活)을 위(爲)한 규칙(規則)으로 여겨서는 안 되고 신앙(信仰)과 실제(實際) 생활(生活)면에서 도움을 주는 것으로만 이해(理解)해야 한다(이 내용(內容)은 주의(注意)가 필요(必要)하다. 왜냐하면 역사적(歷史的) 장로교회(長老敎會)에서는 신앙고백(信仰告白)들을 제 2의 규칙(規則)으로 삼기 때문이다)(엡 2:20; 행 17:11; 고전 2:5; 고후 1:24).

4. 권위(權威)의 한계(限界)
 노회(老會)와 총회(總會)들은 교회(敎會)에 관(關)한 것 이외(以外)의 것을 다루어서는 안 되고 국가(國家)와 관련(關聯)이 있는 사회(社會) 문제(問題)를 간섭(干涉)해서도 안 된다. 다만 특별(特別)한 경우(境遇)에 있어서 겸허(謙虛)하게 청원(請願)하는 형식(形式)을 취(取)하거나 또는 위정자(爲政者)의 요구(要求)가 있는 경우(境遇) 양심(良心)껏 충고(忠告)하는 방식(方式)을 위(爲)할 수가 있다(눅 12:13-14; 요 18:36).


      제32장 사후(死後) 상태(狀態)와 죽은 자(者)의 부활(復活)

1. 죽(死者)은 후(後) 상태(狀態)
 인간(人間)의 육체(肉體)는 사후(死後)에 흙으로 돌아가 썩게 되나(창 3:19; 행 13:36) 영혼(靈魂)(결코 죽거나 잠들지 않음)은 불멸적(不滅的)인 본질(本質)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즉시(卽時) 돌아간다(눅 23:43; 전 12:7). 의인(義人)의 영혼(靈魂)은 죽는 순간(瞬間)에 즉시 거룩함으로 완전(完全)케 되어 지극히 높은 천국(天國)에 들어가 거기서 빛과 영광(榮光) 가운데 하나님의 얼굴을 뵈오며, 몸의 완전(完全)한 구속(救贖)을 기다린다(히 12:23; 고후 5:1,6,8; 빌 1:23; 행 3:21; 엡 4:10). 그러나 사악(邪惡)한 자(者)의 영혼(靈魂)은 즉시(卽時) 지옥(地獄)에 던지어져 거기서 고통(苦痛)과 칠흑 같은 어두움 가운데 지내며, 마지막 날에 심판(審判)을 기다리게 되어 있는 것이다(눅 16:23,24; 행 1:25; 유 6,7; 벧전 3:19). 성경(聖經)은 육신(肉身)이 죽은 후(後)에 영혼(靈魂)이 갈 곳으로 이 두(二) 장소(場所)(지옥(地獄)과 천국(天國)) 외(外)에는 아무 곳도 인정(認定)하지 않고 있다.

2. 두(二) 종류(種類)의 부활(復活)
 마지막 날에 살아남아 있는 자(者)들은 죽지 않고 변화(變化)될 것이로되(살전 4:17; 고전 15:51,52), 죽은 자(死者)들은 모두 전(前)과 같은 몸으로 부활(復活)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부활한 몸은 질적(質的)인 면(面)에서 전(前)과 같지가 않으며 그 몸은 그 영혼(靈魂)과 영원(永遠)토록 결합(結合)될 것이다(욥 19:26,27; 고전 15:42-44).

3. 불의(不義)한 자(者)들의 몸은 그리스도(基督)의 능력(能力)으로 말미암아 부활(復活)하여 굴욕(屈辱) 받게 되나 의(義)로운 자(者)들의 몸은 그의 성령(聖靈)으로 말미암아 부활(復活)하여 영광(榮光)에 이르며 그리스도(基督) 자신(自身)의 영화(榮華)로운 몸을 닮게 될 것이다(행 24:15; 요 5:28,29; 고전 15:43; 빌 3:21).


      제33장 최후(최후) 심판(심판)

1. 일반적(一般的) 서술(敍述)
 하나님께서는 예수(耶蘇) 그리스도(基督)로 말미암아 의(義)로써 세상(世上)을 심판(審判)하실 한 날을 정(定)해 놓으셨다(행 17:31). 예수(耶蘇) 그리스도(基督)에게는 모든 심판(審判)하는 권세(權勢)가 성부(聖父)로부터 주어져 있는 것이다(요 5:22,27). 그 날에 타락(墮落)한 천사(天使)들이 심판(審判)을 받을 뿐만 아니라(고전 6:3; 유 6; 벧후 2:4), 이 땅에 살았던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基督)의 심판대(審判臺) 앞에 서서 자기(自己)들의 생각(生覺)과 말(言)과 행동(行動)의 전말(顚末)을 밝히고, 그들이 선악(善惡)간에 몸으로 행(行)한 것에 따라서 보응(報應)을 받게 될 것이다(고후 5:10; 전 12:14; 롬 2:16; 14:10,12; 마 12:36,37).

2. 심판(審判)의 목적(目的)과 결과(結果)
 하나님께서 이 날을 정(定)하신 목적(目的)은 택(擇)함 받은 자(者)들을 영원(永遠)히 구원(救援)하여 그의 자비(慈悲)의 영광(榮光)을 나타내며, 사악(邪惡)하고 불순종(不順從)하는 버림받은 자(者)들을 정죄(定罪)하여 그의 공의(公義)의 영광(榮光)을 나타내시기 위(爲)함이다. 그때로부터 의인(義人)은 영원(永遠)한 생명(生命)에 이르게 되며, 주(主) 앞으로부터 오는 충만(充滿)한 기쁨과 유쾌(愉快)함을 얻게 될 것이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耶蘇) 그리스도(基督)의 복음(福音)에 순종(順從)하지 않은 사악(邪惡)한 자(者)들은 영원(永遠)한 고통(苦痛) 가운데 던지어져 주(主) 앞으로부터, 그리고 그의 능력(能力)의 영광(榮光)으로부터 오는 영원(永遠)한 파멸(破滅)로 벌(罰)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마 25:31-46; 롬 2:5,6; 9:22,23; 마 25:21; 행 3:19; 살후 1:7-10).

3. 심판(審判) 교리(敎理)의 유익(有益)들
 장차 심판(審判)날이 있으리라는 것을 그리스도(基督)께서 우리에게 확실(確實)하게 확신(確信)시키고자 하셨던 것은 모든 사람들이 죄(罪)를 멀리하게 하고 경건(敬虔)한 사람들이 역경(逆境) 가운데 있을 때 큰 위로(慰勞)를 받게 하시기 위(爲)함이었다(벧후 3:11,14; 고후 5:10,11; 살후 1:5-7; 눅 21:27,28; 롬 8:23-25). 마찬가지로 그는 그날을 사람들에게 감추어 두어서 사람들이 육욕적(肉慾的)인 안전감(安全感)을 떨쳐 버리고 주(主)께서 언제 오실지 그 시간(時間)을 알지 못함으로 항상 깨어 있도록 하셨고, "오시옵소서 주(主) 예수(耶蘇)여, 속히 오시옵소서 아멘"하고 말할 수 있도록 항상(恒常) 준비(準備)케 하셨다(마 24:36,42-44; 막 13:35-37
; 눅 12:35,36; 계 22:20).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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