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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0-04 10:45
기독교강요(상) 제1부 제13장 Ⅲ 삼위일체에 대한 오해
 글쓴이 : 작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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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삼위일체(三位一體)에 대한 오해(誤解)  

12.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은 그의 사역(使役)에서 입증(立證)된다
성경(聖經)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사역(使役)으로 그 신성(神性)을 판단(判斷)한다면, 한층 더 그리스도의 사역(使役)은 명백(明白)해질 것이다. 주님께서 태초(太初)로부터 성부(聖父)와 함께 이제까지 일 하신다고 말씀하시자(요 5:17), 주님의 다른 말씀에 대하여는 극도로 둔감(鈍感)했던 유대인들이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그리스께서 신적권능(神的權能)을 행사(行使)한다고 느끼고,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요 5:18).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이 분명하게 확인(確認)되었다. 그의 섭리(攝理)와 권능(權能)으로 온 우주(宇宙)를 통치(統治)하시며, 자신(自身)의 대권(大權)으로 만물(萬物)을 지배(支配)하시는 것은 전적(全的)으로 창조주(創造主)에게만 속(屬)하는 일들이다. 또한 주님은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사 43:25)라고 말씀하셨다. 이를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죄(罪)를 사(赦)하시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모독(冒瀆)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이적(異蹟)을 통(通)해서도 이를 증명(證明)하셨다(마 9:6).

13.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은 그의 이적(異蹟)을 통(通)하여 입증(立證)된다.
예언자(預言者)나 사도(使徒)들이 그리스도와 똑 같은 이적(異蹟)을 행(行)하였던 것은 사실(事實)이나, 그들은 하나님의 은사(恩賜)를 통(通)하여 이적(異蹟)을 행사(行使)하였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자신(自身)이 권능(權能)을 가지고 행사(行使)하셨다는 점에서 그들의 이적(異蹟)과 그리스도의 이적(異蹟)에는 근본적(根本的)인 차이(差異)가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도(使徒)들에게 죽은 자를 살리고, 문둥이를 고치며, 사귀(邪鬼)를 내어 쫓을 권능(權能)을 주셨다(마 10:8; 막 3:15, 6:7). 사도(使徒)들은 이적(異蹟)을 행(行)할 때마다 그 권능(權能)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각 사역(使役)을 수행(修行)하였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 3:6)고 말하였다. 더욱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구원(救援)이 없으며 의(義)도 없고 생명(生命)도 없지만,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것을 자신(自身) 안에 소유(所有)하신다고 하면, 분명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啓示)된 것이 확실(確實)하다. 그러나 누군가가 생명(生命)과 구원(救援)이 하나님께로부터 그리스도께로 주입(注入)되었다고 한다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구원(救援)받은 분이 아니라, 구원(救援) 그 자체(自體)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선(善)한 분이 하나님 한 분 뿐 이라고 한다면 그리스도는 선(善)과 의(義) 그 자체(自體)이신 것이다. 누구든지 피조물(被造物)을 신뢰(信賴)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불경(不敬) 하는 죄(罪)를 범(犯)하는 것이다. 주님은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를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요 6:47)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스테반은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행 7:59)라고 기도(祈禱)하고 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자신만을 아는 것으로 자랑을 삼으라고 명(命)하셨는데(렘 9:24), 성자(聖子)의 이름만이 우리에게 전해졌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이며 얼마나 위대(偉大)한 일인가? 사도 바울도 그의 서신서(書信書) 첫머리에 성부(聖父)와 성자(聖子)를 동일(同一)한 축복(祝福)의 기원(祈願)으로 말하고 있다(롬 1:7; 고전 1:13; 고후 1:2; 갈 1:3). 이 사실(事實)은 천부(天父)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은사(恩賜)가 성자(聖子)를 중재(仲裁)로 온다는 것뿐 아니라, 성자(聖子) 그 분 자신(自身)이 모든 은사(恩賜)의 창시자(創始者)가 된다는 사실(事實)이다.

14. 성령(聖靈)의 신성(神性)은 그이 사역(使役)에서 입증(立證)된다
우리는 성령(聖靈)의 신격(神格)에 관한 증거(證據)도 이와 같은 근원(根源)에서 찾아야 한다. 창조기사(創造記事)에서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 1:2)고 한 모세의 증거(證據)는 실로 명백(明白)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현재(現在) 보고 있는 이 아름다움은 성령(聖靈)의 능력(能力)에 의해서 보존(保存) 될 뿐만 아니라, 혼돈(混沌)의 덩어리를 성령(聖靈)께서 돌보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의 신을 보내셨느니라”(사 48:16)의 이사야의 말은 아무도 교묘(校帽)하게 해석(解釋)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선지자(先知者)들을 파송(派送)하실 때에 그 최고(最高)의 권능(權能)을 성령(聖靈)과 함께 공동(公同)으로 행사(行使)하시기 때문이다. 성령(聖靈)께서는 온 우주(宇宙)에 편재(偏在)하시어, 하늘과 땅위에 있는 만물(萬物)을 유지(維持)하시고, 그것들을 성장(成長)케 하시며, 그것들을 소생(蘇生)시킨다. 그 분께서는 피조물(被造物)이 아니므로 아무런 제한(制限)도 받지 않으시고, 만물(萬物)에게 생기(生氣)를 불어넣으시고, 본질(本質)과 생명(生命)을 넣어주심에 있어서, 확실(確實)히 그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성령(聖靈)을 통(通)해서 하나님과 교통(交通)할 수 있으므로 우리를 향하신 그의 생명(生命)을 주시는 능력(能力)을 어느 정도 감지(感知)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칭의(稱義)는 성령(聖靈)의 사역(使役)이다. 능력(能力), 성화(聖化)(고전 6:11참조), 진리(眞理), 은혜(恩惠), 그리고 우리가 생각 할 수 있는 일체(一體)의 선(善)이 다 이 성령(聖靈)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은사(恩賜)의 근원(根源)은 성령(聖靈)이기 때문이다.

15. 성령(聖靈)의 신격(神格)에 대한 명백(明白)한 증거(證據)
성경(聖經)은 성령(聖靈)을 “하나님”이라고 지칭(指稱)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영(靈)이 우리 안에 거(居)한다는 사실(事實)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전(殿)이라고 결론(結論)을 내린다(고전 3:16-17, 6:19; 고후 6:16). 어거스틴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나무와 돌로 성령의 전을 세우도록 명령을 받았다 해도 이 영광은 오직 하나님만이 받으셔야 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명령은 성령의 신성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성령을 위해 성전을 세우라고 하지 아니하시고, 우리 자신이 바로 그 성전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니 이 얼마나 분명한 증거인가”. 그리고 사도(使徒)는 가끔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고전 3:16-17; 고후 6:16)이라고 불렀다. 성령(聖靈)을 속였다고 하여 아나니아를 책망(責望)하면서 베드로는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행 5:4)고 말하였다. 많은 교부(敎父)들의 증거(證據)를 생략(省略)하고, 경건(敬虔)한 자들을 위하여 몇 가지 증거(證據)들만 진술(陳述)하고자 한다.

16. 하나님의 하나 되심
바울이 하나님(主), 믿음, 세례 이 세 가지를 그 하나에서 다른 하나를 추리(推理)할 수 있도록 연결시켜 놓았기 때문에, 그는 믿음이 하나이기 때문에, 주도 하나이며, 또한 그는 세례가 하나이기 때문에 믿음 또한 하나라는 사실(事實)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을 정확(正確)히 말해서 성부, 성자, 성령 안에서 아주 명백하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는 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洗禮)를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意味)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아주 명백해 지는 것은, 하나님의 본질(本質) 안에 한 하나님으로 알려진 삼위(三位)가 존재(存在)한다는 사실(事實)이다. 따라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聖靈)을 한 신앙(信仰)으로 믿어야한다.

17. 삼위(三位)
성경(聖經)은 성부(聖父)와 말씀, 그리고 말씀과 성령(聖靈)을 구별(區別)한다. 그러나 이 문제를 규명(糾明)함에 있어서 얼마나 경건(敬虔)하고 신중(愼重)해야 하는 가를, 그 신비(神秘)의 중대성(重大性)이 경고(警告)해준다. 슥 13:7의 말씀은 성자(聖子)가 성부(聖父)와 구별(區別)되는 특성(特性)을 소유(所有)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말씀이 성부와 다른 분이 아니라고 하면, 하나님과 함께 하실 수 없으며, 따라서 말씀이 성부와 구별되지 않는다고 하면 성부와 더불어 영광(榮光)을 함께 나눌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자는 자신을 성부와 구별하여, “나를 위하여 증거 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요 5:32, 8:16)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라고 하심으로써 성령이 성부와 구별되신다는 사실(事實)을 암시(暗示)하셨다(요 5:26; 참조, 14:26). 그리스도께서는 성부가 다른 보혜사(保惠師)를 보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시고(요14:16) 또 다른 곳에서도 성령(聖靈)을 “다른 분”이라고 자기와 구별(區別)된다는 것을 암시(暗示)하셨다.

18. 성부(聖父)와 성자(聖子)와 성령(聖靈)의 차이점(差異點)
옛날 사람들이 가끔 이 방법(方法)을 사용(使用)하면서도 부적당(不適當)하다는 것을 동시(同時)에 고백(告白)하였다. 그러나 일체(一體)의 무분별(無分別)한 행동(行動)을 두려워하면서, 성경(聖經)에 표현(表現)되어 있는 구별(區別)에 대하여 묵과(黙過)할 수 없기에 성경(聖經)이 말하는 바를 진술(陳述)한다. 곧 성부(聖父)는 일의 시초(始初)가 되시고 만물(萬物)의 기초(基礎)와 원천(源泉)이 되시며, 성자(聖子)는 지혜(智慧)요 계획(計劃)이시며 만물(萬物)을 질서 있게 배열(配列)하시는 분이라고 하였으며, 그러나 성령(聖靈)께서는 그와 같은 모든 행동(行動)의 능력(能力)과 효력(效力)이 돌려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성부(聖父)의 영원성(永遠性)은 성자(聖子)와 성령(聖靈)의 영원성(永遠性) 이기도하다. 또한 영원성(永遠性)에 있어서 “먼저”니 “나중”이니 하는 것은 무의미(無意味)하며 이것을 찾아서도 안 된다. 그러나 성부(聖父)가 먼저 생각되고, 다음으로는 성부로부터 성자를, 그 다음에 성부와 성자로부터 성령을 생각하게 될 때에 삼위(三位)의 순서(順序)를 고찰(考察)하는 것은 무의미(無意味)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人間)의 마음은 태어날 때부터 먼저는 하나님을, 그 다음으로부터 나온 지혜(智慧)를, 그 다음으로는 그 계획(計劃)의 작성(作成)을 수행(修行)하시는 능력(能力)에 대하여 생각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理由)로 인하여 성자는 오직 성부에게서만 발생(發生)되며, 동시(同時)에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생된다고 말한다. 로마서 8장은 분명하게 진술(陳述)하고 있는데, “그리스도의 영”(9절)으로, 때로는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11절)으로 불리고 있으나 그것은 조금도 부당(不當)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도 역시 그리스도의 영(靈)으로 말미암아 선지자(先知者)들이 예언(豫言)하였다고 증거(證據)하였으며(벧후 1:21; 참조, 벧전 1:11), 또한 성경(聖經)은 자주 성령(聖靈)을 성부(聖父) 하나님의 영(靈)이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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