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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0-04 08:14
기독교강요(상) 제1부 제13장 Ⅱ 삼위일체에 대한 오해
 글쓴이 : 작은자
조회 : 2,202   추천 : 0  

제13장 삼위일체(三位一體)에 대한 오해(誤解)

6. 가장 중요(重要)한 개념(槪念)의 의미(意味)
내가 말하는 “위”(位)라는 말은 하나님의 본질(本質)에 있어서의 한 “실재”(實在 subsistence)를 의미(意味)하는 것으로, 이것은 다른 실재(實在)와 관계(關係)를 가지면서도 교통(交通)할 수 없는 특성(特性)에 대하여 저들과 구별(區別)된다 우리가 의미(意味)하는 실재(實在)라는 말은 본질(本質)이라는 말과는 다른 무엇을 뜻하는 말이다. 만일 “말씀”이 다만 하나님 일뿐 아무런 특성(特性)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면, 말씀이 항상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요 1:1)라고 한 요한의 말은 부당(不當)한 말이 될 것이다. 그 즉시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첨가(添加)하였는데, 그는 여기서 우리에게 본질(本質)의 단일성(單一性)을 상기(想起)시켜 준 것이다. 그러나 말씀이 성부(聖父)안에 계시지 아니하면 하나님과 함께 계실 수 없기 때문에, 여기에서 실재(實在)의 관념(觀念)이 명백(明白)해 진다. 즉 실재(實在)는 본질(本質)과 밀접(密接)하게 결속(結束)되어 있어 본질(本質)과 구별(區別) 될 수는 없지만, 그러면서도 본질(本質)과 구별(區別)되는 특수(特殊)한 표지(表紙)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세 실재(實在)는 상호관계(相互關係)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각자(各自)의 특성(特性)에 의(依)하여 서로 구별(區別)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7. 말씀의 신격(神格)
나는 여기서 성자(聖子)와 성령(聖靈)의 신격(神格)을 증명(證明)하고자 한다. 성경(聖經)이 우리에게 말씀을 제시(提示)할 때에 그 말씀이 공중(空中)에서 또는 하나님 바깥쪽에서 나온 일시적(一時的)인 소리로 상상(想像)하는 것과, 족장(族長)들과 모든 예언자(預言者)들에게 주신말씀이 이런 종류(種類)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리석은 일이다. 오히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시는 영원(永遠)하신 지혜(知慧)를 의미(意味)하는 것이며, 여기서부터 모든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預言)이 나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증거(證據)한대로, 사도(使徒)들(벧전 1:10-11)과 하늘나라의 교리(敎理)를 위(爲)해 일한 사역자(使役者)들과 마찬가지로 고대(古代)의 예언자(預言者)들도 그리스도의 영(靈)으로 말하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아직 육신(肉身)으로 나타나지 않으셨던 까닭에, 당연히 창세이전(創世以前)에 성부(聖父)께서 하신 것으로 이해(理解)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언자(預言者)들에게 영감(靈感)을 준 영(靈)이 말씀의 영(靈)이었다고 하면 그 말씀을 진실(眞實)로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의심(疑心)할 수 없다.

8. 말씀의 영원성(永遠性)
짖는 개들은 하나님의 영원성(永遠性)을 훔치고 있다. 저들은 우주(宇宙)를 창조(創造)하시고자 하나님께서 자신(自身)의 거룩한 입을 여셨을 때 비로써 이 말씀이 존재(存在)하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저들은 경솔(輕率)하게 하나님의 본체(本體)안에 무엇이 생긴 것으로 상상(想像)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역(使役)의 명칭(名稱)들이 창조사역(創造使役)이 있은 후(後)에 그에게 적용(適用)된다고 주장(主張)하면, 영원(永遠)히 하나님이요 후에는 만유(萬類)의 창조주(創造主)가 되신 바로 그 말씀이 시초(始初)를 가진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용납 못할 일은 없다. 그러나 나는 결론(結論)을 내린다. 즉 “빛이 있으라”(창 1:3)고 말씀하신 그 순간에 말씀의 능력(能力)이 나타나서 뚜렷하게 드러났지만 그러나 말씀은 벌써 오래 전에 존재(存在)하였다고 말이다. 얼마나 오래 전(前)이냐고 묻는 다면 “시작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주께서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소서”(요 17:5)하고 말씀하실 때 주님은 시간(時間)을 말씀하지 않으셨다. 따라서 말씀은 시간(時間)의 시작(始作) 저 편에서 벌써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영원(永遠)토록 그와 더불어 존재(存在)하신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事實)로써 그의 신성(神性)이 확증(確證)되는 것이다.

9. 구약성경(舊約聖經)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그리스도께서 육신(肉身)을 입으신 바로 그 말씀이라는 사실(事實)에 대하여 모든 사람이 일치(一致)해야 하기 때문에, 그의 신성(神性)을 확인(確認)하는 여러 가지 증거(證據)를 소개(紹介)하고자 한다. 시편 45편에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 하며”(6절)라고 기록되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이를 무시한 채 “엘로힘”(Elohim)이라는 명칭을 천사(天使)들과 최고(最高)의 권력자(權力者)에게도 적용(適用)시켰다. 그러나 피조물(被造物)을 위하여 영원(永遠)한 보좌(寶座)가 세워진다고 하는 구절(句節)은 성경(聖經)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만 하나님으로 불릴 뿐만 아니라 또한 영원(永遠)한 통치자(統治者)로도 불리는 분에게만 합당(合當)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렘 23:5-6)고 한 예레미야서의 한 구절은 명백한 말씀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여호와”란 명칭(名稱)만이 그의 본질(本質)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유일(唯一)하신 성자(聖子)만이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주지 아니하리라”(사 42:8)고 선언(宣言)하신 영원(永遠)하신 하나님이라고 결론(結論)을 내린다.

10. 영원(永遠)하신 하나님의 천사(天使)
거룩한 조상(祖上)들에게 나타난 어떤 천사(天使)는 자신(自身)을 영원(永遠)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렀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삿 6:11, 12, 20, 21, 22, 7:5, 9). 또한 이 천사(天使)는 식물을 먹지 아니하고 여호와께 번제(燔祭)를 드리라고 명령(命令)하고 있다(삿 13:16). 실로 이 사실은 그가 바로 여호와라는 것을 입증(立證)한다(삿 13:20). 그러므로 마노아와 그의 아내는 자신(自身)들이 본 것은 단순(單純)한 천사(天使)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 자신(自身)이었다고 결론(結論)을 내린다. 여기서 마노아는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삿 13:22)라고 외쳤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그의 아내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라면 우리 손에서 번제(燔祭)와 소제(素祭)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삿 13:23)라고 답변(答辯)하였다. 이때 그녀는 자신들이 조금 전에 천사(天使)라고 불렀던 바로 그 분이 참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事實)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어찌하여 이를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니라”(삿 13:18)라는 천사(天使)의 대답(對答)이 모든 의심(疑心)을 제거(除去)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나 그 밖의 족장(族長)들에게는 나타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경배(敬拜)를 받은 것은 하나님이 아니고 천사(天使)였다고 주장(主張)한 세르베투스(Servetus)의 불신앙(不信仰)은 더욱 더 가증(可憎)하다 하겠다. 그러나 교회(敎會)의 정통적(正統的)인 학자(學者)들은 이 최고(最高)의 천사(天使)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 말씀은 그때 벌써 중보자(仲保者)의 직무(職務)를 수행(修行)하기 시작(始作)하였다고 올바르고 지혜(知慧)롭게 해석(解釋)하였다. 또한 호세아가 야곱과 천사(天使)와의 씨름을 서술(敍述)한 후(後)에 “저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여호와는 그의 기념 칭호니라”(호 12:5)고 하였다. 세르베투스(Servetus)는 이것을 다시, 하나님이 천사(天使)의 모습을 취(取)한 것임을 의미(意味)한다고 외친다. 이는 마치 이 예언자(預言者)가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창 32:29)라고 한 모세의 말을 확인(確認)하지 못한 것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룩한 족장(族長) 야곱은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다”(창 32:30)라고 고백하였다. 이 고백은, 그가 창조(創造)된 천사(天使)가 아니라, 그 속에 신성(神性)이 충만(充滿)하게 거하시는 분(골 2:9-역자 주)이라는 것을 충분(充分)히 밝혀주고 있다. 그러나 예언자(預言者)들은 성전(聖殿)이 유일(唯一)하신 하나님께 봉헌(奉獻)되었다고 말하며 그 성전(聖殿)이 그리스도께 속(屬)한다고 주장(主張)한다(사 25:9; 말 3:1). 이 사실(事實)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바로 유대인들이 항상 경배(敬拜)하였던 하나님과 같은 분이라는 사실(事實)을 알게 된다.

11. 신약성경(新約聖經)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 사도(使徒)들의 증거(證據)
그리스도의 영원(永遠)하신 신성(神性)에 대(對)하여 적절(適切)한 증거(證據)를 제시(提示)하고자 한다. 첫째, 하나님에 대하여 예언(豫言)된 것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啓示)되었던가, 혹은 어느 날엔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完成)될 것이라는 사도(使徒)의 교훈(敎訓)이다. 만군의 주께서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사 8:14)라고 한 이사야의 예언(豫言)이 성취(成就)되었다고 바울은 주장(主張)하고 있는 것이다(롬 9:32-33). 그러므로 그는 그리스도를 만군(萬軍)의 주(主)라고 선언(宣言)한다. 또한 바울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롬 14:10-11; 사 45:23)고 말한다. 여기에서 그가 바로 그 영광(榮光)이 어느 누구에도 양도(讓渡)될 수 없는 하나님 자신(自身)이라는 결론(結論)이 나온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롬 9:5)이라고 불러 공개적(公開的)으로 그의 신성(神性)을 주장(主張)하였는데, 어찌 그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심판대(審判臺)에 앉히기를 두려워했겠는가?(고후 5:10) 그리고 그는 자신이 이 문제에 대하여 조금도 모순(矛盾)이 없다는 것을 명백히 하기 위해 다른 곳에서, “그(하나님)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딤전 3:16)라고 기록하였다. 또한 우리는 바울에게서,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딤전 3:16),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 20:28)고 하는 말씀을 듣는다. 그리고 도마도 그리스도를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시니이다”(요 20:28)라고 공개적(公開的)으로 주장(主張)함으로써, 그 분이 자기(自己)가 항상 예배(禮拜)를 드리던 유일(唯一)하신 하나님이심을 고백(告白)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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