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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9-30 10:39
기독교강요(상) 제1부 제13장 Ⅰ 삼위일체
 글쓴이 : 작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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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성경(聖經)은 창조이래(創造以來)로 하나님은 한 본체(本體)이시며 이 본체(本體) 안에 삼위(三位)가 존재(存在)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1. 하나님의 본성(本性)은 불가해(不可解)하며 영적(靈的)이다
성경(聖經)은 하나님의 본질(本質)이 무한(無限)하시며 영적(靈的)이시라는 것을 가르친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보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 모두가 하나님이시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신적(神的)인 요소(要素)들이 우리들의 보는 모든 곳에 침투(浸透)해 있다고 상상(想像)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신중(愼重)을 위해서 자신(自身)을 충분(充分)하게 나타내시지 않으셨지만, 그 특성(特性)을 통(通)하여 어리석은 상상(想像)을 제거(除去)하시며, 인간(人間)의 분방(奔放)함을 억제(抑制)하신다. 하나님의 영적(靈的)인 본성(本性)은 실로 자신에 대한 세속적(世俗的)이고 육적(肉的)인 어떠한 상상(想像)도 우리에게 허락지 아니하신다. 따라서 우리의 감각(感覺)으로는 하나님을 측량(測量)할 수 없다. 하나님은 이렇듯 불가(不可)하신 분이시면서 또한 땅에 충만(充滿)하신 분이다.

2. 하나님 안에 삼위(三位)가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신(自身)이 우상(偶像)과 정확(正確)히 구별(區別)하시기 위해 또 다른 특성(特性)을 보여주신다. 하나님은 자신(自身)이 홀로 한 분이시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동시(同時)에 명백(明白)하게 자신이 삼위(三位)로 고려(考慮)되어야 한다고 주장(主張)하신다. 이러한 진리(眞理)를 파악하지 못할 때, 우리의 머리에는 공허(空虛)한 상상(想像)과 혼란(混亂)이 올 것이다. 유일(唯一)하신 하나님이 세분이라는 생각과, 삼위(三位)로 분할(分割)되었다는 오류(誤謬)에서 지켜줄 쉬운 정의(正義)가 있다. 사도(司徒)는 성자(聖子)를 가리켜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히 1:3)고 하였는데, 그는 이때 틀림없이 성부(聖父)를 성자(聖子)와 다른 어떤 실재(實在)로 보았다. 왜냐하면 본체(hypostasis)라는 말을 본질(essence)이라는 말과 동의어(同義語)로 해석(解釋)하는 것은 조잡(稠雜)하고 불합리(不合理)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본질(本質)은 단일(單一)하시며 분할(分割)할 수 없다. 하나님은 자신(自身) 안에 모든 것을 포함(包含)하시되 부분적(部分的)이 아닌, 파생적(派生的)이 아닌 완전(完全)하게 포함(包含)하기 때문에, 성자(聖子)가 하나님의 본질(本質)의 형상(形象)이라고 불리는 것은 당치 않고 불합리(不合理)하다. 그러나 성부(聖父)는 비록 자신의 고유(固有)한 특성(特性)에서 구별(區別)되었지만, 성자(聖子) 안에서 전적(全的)으로 자신(自身)을 나타내셨기 때문에, 그가 성자(聖子) 안에서 자신(自身)의 본체(本體)를 나타내셨다고 주장(主張)하는 것은 충분(充分)한 이유(理由)가 된다. 이것은 같은 구절(句節)의 그가 “하나님의 광채”(히 1:3)의 말씀과 잘 조화(調和)를 이룬다. 이 같은 사도(司徒)의 말을 통(通)하여, 성자(聖子) 안에 있는 바로 그 본체(本體)가 성부(聖父)안에 있다고 결론(結論)지을 수 있다. 또한 이 사실(事實)을 통해서 성자(聖子)에게도 본체(本體)가 있으며, 이것이 바로 성자(聖子)를 성부(聖父)와 구별(區別)시켜 준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세 본체(本體)가 있는데, 본질(本質)은 하나이다. 라틴 교부들은 이 말을 “위”(위:person)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 말을 직역(直譯)하기 원한다면 실재(subsistence), 또는 실체(substance)라고 사용하였다. 라틴 교부들뿐만 아니라 희랍교부들도 위(位)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그들은 하나님 안에 세 ‘프로소파’(얼굴)가 있다고 가르쳤다. 그들은 용어상(用語上)의 차이(差異)는 있으나 그 실질적(實在的)인 면에서는 완전(完全)히 일치(一致)하고 있는 것이다.

3. “삼위일체”(三位一體) 와 “위”(位)라는 표현(表現)은 성경해석(聖經解釋)에 도움을 주는 말이므로 인정(認定)할 수 있는 표현(表現)이다
이단자(異端者)들은 “위”라는 말에 대하여 불평(不平)을 토로하며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온 말이므로 인정(認定)할 수 없다고 부르짖고 있지만, 그러나 삼위(三位)가 존재(存在)한다는 것과, 삼위(三位)의 각자(各自)가 완전(完全)한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그리고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것은 우리의 확신(確信)이다. 그러나 저들은 성경(聖經)의 테두리 안에서 우리의 용어(用語)와 사상(思想)으로 제한(制限)시키는 것이 좋다고 주장(主張)한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성경(聖經)에 기록(記錄)되지 않았다고 해서 외래어(外來語)라고 한다면, 실로 부당(不當)한 법칙(法則)을 부과賦課)하여 성경(聖經)의 구조(構造)에 맞지 않는 성경(聖經)의 해석(解釋)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理解)하기 어렵고 난해(難解)한 성경(聖經)의 구절(句節)들을 명백한 말로 설명(說明)하는 것을 누가 못하게 하겠는가? 그러나 그 설명은 성경자체(聖經自體)의 진리(眞理)를 성실(誠實)하고 정확(正確)하게 전달(傳達)해야 하며, 겸손(謙遜)하고 조심스럽게 그리고 적당(的當)한 때에 사용(使用)되어야 한다.

4. 교회(敎會)는 거짓 교사(敎師)들을 폭로(暴露)하기 위해서는 “삼위일체”(三位一體)나 “위”(位)와 같은 표현(表現)들이 반드시 필요(必要)하다고 생각한다
진리(眞理)를 떠난 거짓 비난 자들을 대항(對抗)해서 진리(眞理)를 주장(主張)할 때에는 이러한 신기(神技)한 용어(用語)가 특히 유용(有用)하다. 인간(人間)의 교활(狡猾)함은 뱀 같이 사악(邪惡)하여 오류(誤謬)를 감추기 위하여 곧 잘 술책(術策)을 부린다. 아리우스는 성경(聖經)의 명백한 증거(證據)를 대항할 수가 없어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고는 마치 당연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동의(同義)를 구하는 척 하다가는, 그리스도도 다른 피조물(被造物)과 같이 창조(創造)되었기 때문에 시초(始初)를 가진다고 주장(主張)하였다. 이와 같은 숨은 사악(邪惡)함을 끌어내려고 교부(敎父)들은, 그리스도는 성부(聖父)의 영원(永遠)하신 아들이며 그 본질(本質)이 성부(聖父)와 동일(同一)하다고 선언(宣言)하였다 그 단순(單純)한 용어(用語)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럽히는 모독(冒瀆)적인 아리우스파 와의 사이를 구별(區別)지은 것이다 또한 그 후에 사벨리우스(Sabellius)리는 사람은 성부(聖父)란 성자(聖子)를 말하며, 성령(聖靈)은 성부(聖父)를 의미(意味)하는 것으로써, 여기에는 아무 순서(順序)나 구별(區別)도 없다고 주장하였다. 경건(敬虔)을 소유(所有)한 많은 학자(學者)들은 이 사벨리우스에 대항(對抗)하기 위하여, 한 분 하나님 안에 삼위(三位)가 존재(存在)한다는 사실(事實), 하나님의 단일성(單一性) 안에 삼위(三位)가 계신다는 것을 진심(眞心)으로 확언(確言)하였다.

5. 신학적(神學的) 용어(用語)의 한계성(限界性)과 필요성(必要性)
나는 모든 사람들의 신앙(信仰)이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이 한 분 하나님이시나 성자는 성부가 아니며, 성령 또한 성자가 아니며, 그들 각자(各自)는 서로가 어떤 특성(特性)에 의하여 구별(區別)된다고 하는 이 점(點)에 일치(一致)하게 된다면, 이 용어(用語)들은 잊혀져도 좋다고 생각한다. 라틴 교부(敎父)들과 희랍 교부들 간에도 견해(見解)의 일치(一致)를 보지 못한 용어(用語)이므로, 나는 이 문제(問題)에 집착(執着)하지 않겠다. 그러나 한 가지 실례(實例)만을 들겠다. 라틴 교부들이 “호모우시오스”라는 말을 번역(翻譯)하고자 할 때, 그들은 성부와 성자의 실체(實體)는 하나라는 것을 가리키는 “동일 본질”(同一本質 consubstantial)이라는 말을 하였으며, 이리하여 “실체”(實體)라는 말을 “본질”(essence)이라는 말 대신에 사용(使用)하였다. 제롬(Jerome)역시 다마수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나님 안에 세 실체(實體)가 존재(存在)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冒瀆)하는 것이라고 주장(主張)하였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세 실체(實體)가 있다는 말을 힐라리(Hilary)의 글에서 백 번 이상 발견(發見)하게 될 것이다. 제롬은 실체(實體 hypostasis)라는 말에 대하여 얼마나 혼란(混亂)을 일으켰던가? 왜냐하면 하나님 안에 세 본체(本體)가 존재(存在)한다고 주장(主張)하는 데는 어떤 독(毒)이 숨어 있다고 그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경(聖經)이 한 하나님이라고 말할 때에 우리는 그것을 본체(本體)가 하나인 것으로 이해(理解)해야 하며, 성경(聖經)이 한 본질(本質) 안에 셋이 있다고 할 때에는 그것이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세 위격(位格)을 의미(意味)한다는 것을 부정(否定)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원칙(原則)하에서는 용어(用語)에 대하여 논쟁(論爭)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오랜 경험으로 볼 때에 용어(用語)에 대하여 집요(輯要)하게 논쟁(論爭)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숨은 독소(毒素)를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음으로 모호(模糊)한 말로 저들의 환심(歡心)을 사기 위한 것보다는 고의적(故意的)으로 저들에게 도전(挑戰)하는 것이 보다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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