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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9-14 07:39
기독교강요(상) 제1부 제7장 성경의 확증
 글쓴이 : 작은자
조회 : 2,424   추천 : 0  

제7장
성경(聖經)은 반드시 성령(聖靈)의 증거(證據)로 확증(確證)되어야 한다. 그러면 그 권위(權威)는 확실한 것으로 확립(確立)될 수 있다. 그리고 성경(聖經)의 신빙성(信憑性)이 교회(敎會)의 판단(判斷)에 의해 좌우(左右)된다는 것은 악랄(惡辣)한 거짓이다.

1. 성경(聖經)의 권위(權威)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지 교회(敎會)에서 온 것이 아니다.
공포(公布)된 것이 하나님 말씀이라고 인정(認定)되었을 경우,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식(常識)을 벗어나거나 인간성(人間性) 자체(自體)를 흠결(欠缺)하고 있지 않는 한, 그렇게 말씀하신 분에 대한 신뢰(信賴)를 감히 비난할 만큼 비극적(悲劇的)인 오만(傲慢)에 빠질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 우리는 매일같이 하늘로부터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성경(聖經) 안에서만 자기의 진리(眞理)를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신성(神聖)하게 보존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요 5:39참조). 마치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하늘로부터 직접 듣는 것처럼, 성경의 기원(起源)이 하늘로부터 유래(由來)되었다고 생각할 때에만, 비로소 성경은 신자(信者)들로부터 완전(完全)한 권위(權威)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敎會)의 승인(承認)을 얻을 때에만 비로소 성경은 그 중요성(重要性)을 가지게 된다고 하는 가장 유해(有害)한 오류(誤謬)가 현재 널리 유행(流行)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의 영원하시며 인간에게 침범(侵犯) 받을 수 없는 진리(眞理)가 인간의 결정(決定)에 의해서 좌우(左右)된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이 물을 때, 성령(聖靈)은 조롱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곧 하나님께서 성경(聖經)의 저자(著者)라는 것을 누가 우리에게 믿게 할 수 있는가? 성경이 오늘날까지 완전하게 또는 상(傷)하지 않게 보존(保存)하여 왔다는 것을 누가 우리에게 보증(保證)할 수 있는가? 이러한 책(冊)들의 보존을 교회(敎會)가 규정(規定)하지 않았다면 그 어떤 책들이 정경(正經)에 편입(編入)될 수 있었겠는가? 이와 같이 교회(敎會)라는 이름 밑에서 무제한(無制限)의 횡포(橫暴)를 즐기는 독신적(瀆神的)인 사람들은, 교회는 모든 것에 관하여 권위(權威)를 가진다는 이 한 가지 관념(觀念)을 단순한 사람들에게 강요(强要)할 수만 있다면, 자타(自他)를 곤경에 빠지게 하는 그 불합리(不合理)에 관해서는 아무런 관심(觀心)도 가지지 않는다. 영생(永生)에 대한 일체(一體)의 약속(約束)이 사람의 판단(判斷)으로 결정(決定)되고, 그 판단에만 의존(依存)한다면, 그 영생의 확신을 찾고 있는 비참(悲慘)한 영혼(靈魂)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의 신앙이 인간만족(人間滿足)에 의존(依存)하는 불안정(不安定)한 권위(權威)의 것이라면, 불경자(不敬者)들은 우리의 신앙을 얼마나 조롱할 것이며, 많은 사람이 우리의 신앙(信仰)을 얼마나 의심(疑心)할 것인가.

2. 교회(敎會)의 기초(基礎)는 성경(聖經)이다.
그러나 그러한 논쟁자(論爭者)들은 사도 바울의 단 한마디 말로도 훌륭하게 반박(反駁) 할 수 있다. 곧 교회(敎會)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었다”(엡 2:20)고 사도(使徒)는 증거(證據)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선지자(先知者)와 사도(使徒)의 교훈(敎訓)이 교회(敎會)의 기초(基礎)라고 한다면, 그것은 확실(確實)히 교회가 존재(存在)하기 이전(以前)에 벌써 그 권위(權威)를 갖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교회가 그 처음 시작(始作)을 성경에서부터 가졌다 하더라도 교회가 그것을 결정(決定)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것이 선지자(先知者)와 사도(使徒)가 쓴 책이겠는가 하는 것은 여전히 의심(疑心)으로 남게 된다고 하는, 그들의 교활(狡猾)한 반대(反對)도 또한 아무런 근거(根據)가 없는 것이다.

3. 어거스틴의 말을 반증(反證)으로 내세울 수 없다.
실로 교회(敎會)의 권위(權威)가 복음(福音)을 믿도록 마음을 감동(感動)시키지 않으면 그는 복음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한 어거스틴의 말이, 일반적(一般的)으로 인용(引用)되고 있으나, 그들이 이 문맥(文脈)을 얼마나 나쁘게 해석(解釋)하고 있으며, 또한 기만적(欺瞞的)으로 해석(解釋)하는 가는 전후문맥(前後文脈)으로 보아 알 수 있다. 어거스틴은 거기서 마니교들(Manichees)을 의식(意識)하고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그들이 마니(Mani)에 대한 신앙을 증진(增進)시키기 위한 구실로 복음을 사용(使用)하였기 때문에, 어거스틴은 그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만일 여러분들이 복음을 믿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떤 종류의 설복력(設伏力)을 가지고 그들을 여러분들의 의견으로 돌아오게 하겠습니까?” 그는 이어 “실로 나는 복음을 믿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 말은 만일 신앙에 대한 문외한(門外漢)이라면 교회의 권위(權威)로 강요(强要)당하지 않는 한 복음을 하나님의 확실한 진리(眞理)로 받아들이게 되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어거스틴은 경건(敬虔)한 자의 신앙(信仰)이 교회의 권위 위에 세워진다고 가르치지도 않았고, 복음의 확실성(確實性)이 교회의 권위에 의존(依存)한다고 가르치지도 않았던 것이다. 다만 그는 교회의 증인이 불신자(不信者)들을 교회로 인도(引導)하지 않으면 그리스도께로 인도(引導)되는 복음의 확실성(確實性)을 그들이 가지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누구든지 이 부분에 대하여 더 알기를 원한다면, ‘신앙의 유익을 위하여’(The Usefulness of Belie
f)라는 어거스틴의 소책자(小冊子)를 읽기 바란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말한 대로 믿음의 유익(有益)의 적절(適切)한 시초(始初)를 형성(形成)해 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한 견해(見解)로만 만족(滿足)해 할 것이 아니라, 확실(確實)하고 견고(堅固)한 진리(眞理)를 신뢰(信賴)해야 할 것이다.

4. 성령(聖靈)의 증거(證據)는 다른 모든 증거보다 강(强)하다.
하나님이 교리(敎理)의 저자(著者)라는 사실을 의심(疑心)치 않고 확신하기 전에는, 교리(敎理)에 대한 신앙이 수립(樹立)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성경에 대한 최고(最高)의 증거(證據)는 일반적(一般的)으로 하나님이 인격적(人格的)으로 성경(聖經) 안에서 말씀하시는 사실에서 얻게 된다. 그러나 논쟁(論爭)을 통하여 성경에 대한 견고(堅固)한 신앙(信仰)을 세워보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모세와 선지자(先知者)들이 영감(靈感)으로 말한 것을 합리적(合理的)으로 입증(立證)해주길 바라나, 성령(聖靈)의 증거(證據)는 일체(一體)의 이론(理論)을 훨씬 능가(凌駕)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만이 자기 말씀에 합당(合當)한 증인이 되시는 것처럼, 그 말씀도 성령의 내적증거(內的證據)에 의하여 확증(確證)되기 전에는, 사람의 마음에 받아들여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그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들여오셔서, 선지자들에게 선포(宣布)하신 그 사실이 우리에게 확신(確信)시켜질 때, 비로소 우리에게 믿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이사야는 “네 위에 있는 나의 신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영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사 59:21). 불경자(不敬者)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믿지 않고 투덜대는 것을 볼 때, 그들은 반대하는 뚜렷한 증거를 찾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선(善)한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성령이 그들의 마음을 조명(照明)하기 전에는 수많은 회의(懷疑) 속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다.

5. 성경(聖經)은 자증(自證)한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입장(立場)을 고수(固守)하자. 곧 “성령으로 말미암아 내적으로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진심으로 성경(聖經)을 신뢰한다는 것, 그리고 성경(聖經)은 자증(自證)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증거나 이성(理性)에 종속(從屬)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그리고 성경이 마땅히 지녀야 할 확실성은 성령의 증거에 의해서 얻게 된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 자체(自體)로 인하여 위엄(威嚴)을 인정(認定)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성령(聖靈)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속에서 확증(確證)되기 전에는 진정으로 우리를 감동(感動)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聖靈)의 조명(照明)을 받았기 때문에, 성경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우리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판단에 따라 믿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인간적(人間的)인 판단(判斷)을 초월(超越)하여, 성경이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인간의 사역(使役)을 통하여 흘러나왔다는 사실을, 마치 우리가 하나님 자신의 위엄을 응시(凝視)하는 것처럼 아주 확실(確實)하게 단정(斷定)한다. 따라서 우리의 판단력(判斷力)과 기지(機智)를 성경에 예속(隸屬)시킨다. 이 의식(意識)에 의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확실한 신적위엄(神的威嚴)의 능력(能力)이 성경 안에서 살아서 숨 쉬고 있음을 실감(實感)한다. 이 능력이 우리로 하여금 자발적(자발적)으로 또는 의식적(意識的)으로, 하나님께 순종(順從)하되, 인간적(人間的)인 의지(意志)나 지식(知識)에서가 아니라, 보다 더 생생하고 보다 더 효과(效果) 있게 순종하도록 마음이 끌리게 되며 또한 순종(順從)의 불을 태우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선지자(先知者)들과 온 백성(百姓)은 다 자기(自己)의 증인(證人)이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가 예언(預言)의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께서 추호(秋毫)의 거짓이나 애매한 점이 없이 말씀하였다고 주장(主張)하였기 때문이다(사 43:10). 곧 이것은 최고(最高)의 이성(理性)으로 입증(立證)된 지식(知識)이며, 아무 이론(理論)도 필요치 않은 확신(確信)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靈)이 우리 마음에 인(印)치시는 신앙(信仰)만이 참된 신앙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즉 이사야는 회복(回復)된 교회(敎會)의 모든 자녀들에게 약속하기를,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사 54:13)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선민(選民)에게만, 곧 전체(全體) 인류(人類) 가운데서 그가 구별(區別)해 내신 자(者)들에게만 이 유일(唯一)한 특권(特權)을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의 입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우리의 주위를 환기시킨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갈꼬 누가 우리를 위하여 깊은 데로 내려갈꼬 네 마음에 이루지 말라 오직 그 말씀이 네 입에 있느니라”(신 30:12,14참조)고 하셨다. 만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이 이해(理解)의 보화(寶貨)를 감추기로 결정하셨다면 제아무리 뛰어난 자라하더라도 그들이 그리스도의 몸에 접 붙혀지기 전에는 믿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警告)하고 나서, “하나님의 비밀을 받은 자 외에는 아무도 이를 이해 할 수 없다”(마 13:11참조)고 하신 것이다. 더욱이 이사야는 예언(預言)의 교훈(敎訓)이 외국인(外國人)들뿐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家族)으로 인정(認定)받기를 원(願)하였던 유대인에게까지도 믿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사 53:1). 그러므로 믿는 자(者)의 수(數)가 적은 것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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