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hetes Reformed Theological College & Seminary::
 
 
 
공지사항
교수칼럼
자유게시판
문서자료
학생활동
유용한 자료
 
 
 
 
작성일 : 12-08-22 01:54
소위 < Verichip> 소동에 관한 고찰(Ⅲ)
 글쓴이 : 작은자
조회 : 2,430   추천 : 0  

3. “표” 를 받은 자 의 해석이 문제이다                             김명도박사(신약신학교수)

“표” 가 무엇인가? “표” 라는 말은 계시록에 여러 번 나온다. 14:9, 19:20; 20:4 에 모두 "표“ 란 말이 등장한다. 14:11에 보면 이 표를 받는 자는 짐승에게 ”먼저 경배하고 나서“ 그 ”표“를 받게 된다. 먼저 ”표“를 받은 다음에 짐승에 경배하는 것이 아니고 짐승을 경배하기 때문에 (손으로 이마=머리로) ”표“ 를 받는 것이다. 또 ”짐승에 경배하거나, 혹은, 표를 받는자” 중 어느 하나도 아니다. 본문의 내용은 반드시 “경배한 후에 표를 받는자” 임이 확실하다. 이 구절을 문법적으로 보면 짐승에게 경배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 사람은 표를 받게 된다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구원을 받아, 예수를 믿는 성도가 고의적으로 사탄을 경배할 수 없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요한일서 2:19 말씀대로 원래부터 예수를 믿는 성도가 아니었는데 성도로 가장하고 있던 거짓 성도 이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오히려 짐승에게 경배하며 짐승을 따르며 짐승을 생각하고 짐승의 영광을 위해서 손을 놀리는 사람들이 짐승이 표를 받듯, 계시록 7:3 을 보면, 예수를 주로 모시고 주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는“이마’에 인침을 받았다” 고 말한다. 여기서 “이마에” 란 말을 깊이 생각하라. 여기서도 짐승의 표를 이마에 맞는다는 말의 이마와 같은 의미이다. 다만 “표”의 성격이 다를 뿐이다. 짐승의 표는 사탄숭배의 결과이고 어린양의 인침을 받는 다는 말은 구원의 “표” 임은 두말 할 것 없다.

 

성경말씀이 두 군데 모순될 수 없다. 짐승을 경배하는 자는 짐승의 표를 이마에 맞고 예수를 믿는 성도는 어린양의 그 이름을 “이마” 에 인침 받는다. 즉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만 경배하고 그에게만 영광을 돌리는 권세를 부여 받으며 이마=머리 와 손 으로 그리스도의 영광만을 나타낸다는 말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성도들의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이 인침 받은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성도의 이마에 “나는 어린양의 이름을 이마에 인치고 다닌다” 라고 이마에 기록하여 모든 사람이 보게 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도 눈에 보이게 표를 받는 것이 아니다. 사탄은 뒤에서 숨어서 보이지 않게 역사한다. 불신자나 사이비신자의 이마에 “나는 짐승의 표를 받았다” 라고 써 붙이고 다니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베리칩 처럼 몸에 붙이고 다니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라.

 

18절의 666 은 어떻게 해석하는가?

전에 언급한대로 계시록은 고도의 상징문헌이다. 13장 초두부터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이란 정말 동물인가? 아니면 상징적인 교훈인가?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정말 동물인가? 상징인가? 스스로 판단해 보라. 상징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면 666은 왜 상징으로 해석하지 않는가? 666 은 문자 그대로 666인가? 아니면 다른 상징적 의미가 있는가? 만일 상징성이 있다면 무엇을 상징하는가?

 

성경에서 “7” 이란 숫자는 완전수 이다. 무엇이든 완전을 나타날 때 7을 쓴다. 반면 6 7 보다 모자란다. 사탄은 하나님과 필적(匹敵) 할 수 없다. 사탄은 아무리 애써도 결단코 7에 이르지 못한다. 아무리 하나님을 닮아 보려고 모방해도 결국은 조금 모자라는 “6”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것이 사탄이다. 하나님은 천지창조도 7, 또한 지성소 안에서 대제샤장이 일년에 한번씩 들어가 백성의 죄를 속죄할 때도 “수송아지의 피를 일곱 번 뿌렸고”(레위기 16:14,19), 여호수아 6장을 보면 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도 하나님은 명령하시기를 여리고성을 7번 돌라고 했고 마지막 날에는 제사장 7명이 나팔 7개를 가지고 7번 성을 돌라고 했지 않은가? 7”은 하나님의 숫자이며 완전수 이다. 힌퍈 “6”은 사탄의 수이다. 다시금 성구사전을 보면서 숫자 “7” 과 “6” 이 성경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를 자세히 관찰하라.

 

뿐만 이니라, 계시록 13:18에 보면 “6”이란 숫자는 “심판‘을 상징한다. 계시록을 보라. 6번째 인을 마치고, 6번째 나팔, 6번째 진노의 대접이 끝날 때 마다 사탄의 사역은 실패로 끝난다. 그러므로 666은 사실은 6666666666666666 이렇게 무한대로 계속된다. 즉 사탄의 계교는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항상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교훈이다. 그러므로 666은 어느 매체나 어느 반도체도 아니고 사탄 그 자체을 의미한다. 그 사탄은 마지막 때, 특히 주님의 재림이 닥아 올수록 단말마적 발악으로 성도들을 시험하고 해친다. 방법도 다양하다. 그는 ”거짓의 아비이면 살인자“ 이다 ( 8:44).

 

그러나 계시록 17:14에서 말하듯, 성도는 반드시 이긴다. 계시록 17:14은 계시록 전체의 요절(要節 key verse) 이다 계시록은 이 한 구절을 전개시켜 나간 것이다. 베리칩이 짐승의 표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예수를 바로 믿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예수를 바로 믿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 ( 1:8-9). 복음을 듣고 교회에 나간다고 모두 구원이 없는 것이 아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대요리문답 제61). 무형교회에 속한 사람 즉 진정으로 중생하여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만 섬기며 주의 뜻대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만 구원이 보장되어 있다. 그리고 한번 구원을 얻은 성도는 절대로 구원을 상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말은 구원을 얻었으니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요한일서 3:9 말씀은 구원을 받은 사람은 “상습적으로, 고의적으로, 반복적으로” 죄를 짓이 않는다고 가르친다 (3:9 원문 참조). 그러므로 주를 믿는다고 하면서 죄에 대한 아픔이 없이, 회개도 없이 죄에 무관심한 사람은 아무리 교회에서 중직을 맡고 있다고 자처해도 아직 구원을 얻지 못한 사람이다.

계시록의 사데교회는 “살아 있다고 하나 죽은 교회”라고 주님이 책망했다. 오늘도 사데교회 같은 교회가 얼마나 많은가?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순교할 정신으로 예수를 사랑하며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하는 참된 성도가 과연 몇 명이나 되는가? 그래서 주님은 눅 18:8에서 인자가 올 때에 이 땅에서 “믿음‘을 보겠는가? 라고 탄식하시지 않았는가? 원문에서는 ”믿음“ 이란 단어 앞에 여성 정관사 단수 목적격 ten 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어서 ”ten pistin"(the faith) 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믿음이 아니라 “성경적 믿음” 을 말함이 분명한데 주님이 재림하실 때 그런 성경적 믿음을 이 땅에서 찾아 보기 어렵다는 말씀이다. 말세론자들의 ‘베리칩“ 이 문제가 아니라 참다운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이것이 최대의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진정 거듭난 사람은 두려워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택한 그의 백성을 아시고 “아무도 내게서 빼앗을 자가 없다” 고 요한복음 10: 28에 분명히 그의 언약백성에게 약속하지 않는가?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진리 그 자체 이시므로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

 

베리침이 666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구원의 확신이 없거나 조직신학이 약하거나 성경해석법을 몰라서 생겨난다고 보아진다. 앞서 말했듯, 한번 구원을 얻은 성도는 절대로 구원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성경의 가르침이다. 예를 들어 엡 2:8을 보라 "te gar chariti este sesosmenoi dia pisteuws" 인데 여기서 ‘구원한다“라는 말은 "sozo" 동사의 남성 복수 주격 완료분사이다. 헬라어에서 완료형은 ‘과거에 이룩된 어떤 동작의 결과나 효과가 영원히 변치 않는다“ 는 뜻일 때 만 쓰인다 (Ernest De Witt Burton Syntax of Moods and Tenses in the New Testament Greek [rep. Kregel Classics, 1976]; A.T.Robertson A Grammar of Greek New Testament in the Light of Historical Research [orig. Nashville: Tenn.: Broadman Publishing Co., 1920, rep. B&H Academic, 1947], 등 참고).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정을 입어(1:4) 창세전에 선택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용서 받은 성도는 "한번 구원 받은 그 사실이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다" 는 틀림없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 없이 믿어야 한다.

 

마치 하나님이 마귀와의 싸움에서 실패하여 베리칩을 받으면 구원을 포기하는 그런 분이 아니다 요한복음 10:28 에서는 “저희 [구원을 얻은 자]를 내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 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요한복음 10:29절에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라고 아주 명명백백하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지 않은가? 베리칩을 받으면 구원을 잃어버린다고 가르치는 분들은 이 말씀을 왜 안 든는가? 주님은 창조주 이시고, 믿는 성도들을 그의 피값으로 사신 분이며 만주의 주시면 만왕의 왕이시다. 주의 날, 즉 마지막 날에 사탄을 불못에 던지시고야 말 분이다. 베리칩을 받고 말고에 따라서 구원하기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해 주신자들을 사탄에게 내어 주실 분이 결코 아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4 을 읽어보라. 하나님의 예정은 “영원불변하시다” 라고 가르쳐 주지 않는가? “베리칩”을 받으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변개되는가? 창세전에 택한 성도도 베리칩을 받으면 버리시는 하나님인가?

 

또한 로마인서 8:38-39 을 읽어 보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고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라고 바울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베리칩 소동" 에 현혹되거나 두려워 말고 매일 매일이 나의 마지막 날인 양 옷깃을 여미고 주의 나라 위해서, 전도하며 부지런히 선교해야 할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은 천국의 개념을 이 세상에서의 성취로 생각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천국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영적인 왕국이라는 점이 세대주의자들과 다른 신학이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그것으로 세상은 종말이며 이 세상에서 지상낙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지금 뉴에이지 운동가들은 종교통일 운동을 통해서 이 땅 위에 Maitreya 가 지배하는 왕국을 건설하려고 WCC 를 통하여 열심히 활동하고 있지만 주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 혹은 천국, basileia tou theou, basileia ton ouranon) 은 영적인 나라이다. 주님 자신이 빌라도 앞에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는 문제의 “건강보험개혁법” 제정의 위헌여부를 토의하고 있다. 그러나, 3일간 토의를 끝내고 지금은 deliberation 기간이다. 연방판사 9명이 어떻게 투표느냐에 따라 그 법은 폐기될 수도 있다는 보도가 흘러나온다. 그 법이 2015년부터 시행되건, 수정되건, 폐기되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성도의 구원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앞으로 더 어려운 핍박의 시대가 도래한다. 오늘 21세기에도 중동지방에서는 매일 많은 기독교 성도가 순교하고 있지 않은가? “베리칩” 때문이 아니다. 종말은 생각보다 속히 닥아 오고 있다. <베리침> 말고도 실제로 예수를 믿기 때문에 당국에 체포되어 옥에 갇히고 죽임을 당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그날이 오고 있고, 지금 벌써 우리 눈앞에 와 있다.

 

순교할 때가 되면 순교하여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각오가 되어 있어야 참 성도이다. 한번 구원을 얻은 백성은 구원을 잃지 않는다. “짐승의 표” 는 우선 짐승에게 경배한 사람에게 주어진다. 그러하다면 참 성도로서 짐승에게 경배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성도의 소망은 마지막 주의 날에 있을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이것이 성경적인 개혁주의 신앙이다. 주님은 “감란산강화” (24)에서 “미혹을 받지 말라” 고 여러 번 제자들에게 경고하셨다. 우리도 미혹을 받지 않도록 조심하자, 금년 12 21일이 지구 종말의 날이라는 Maya Calendar를 믿을 것인가? “베리칩 소동”을 믿을 것인가? Post Tenebras Lux !

 

오늘 성경해석의 난맥상은 위험수위에 달하고 있다. 누구나 아무렇게나 성경을 해석하여 다른 사람을 미혹하게 한다. 성경해석에는 성경해석의 원칙이 따로 있다. 옛날 기원 12세기에 이태리에 Joachim da Fiore (Joachim de flore 라고 하기도 함) 라는 분이 있었는 그는 제법 당시로는 공부도 많이 한 분이었지만 중세사람 대부분이 그러했듯 극도의 신비주의에 빠져 있어서 수도사 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책을 몇  썼는데 그 중에서 문제가 된 것은 그의 "계시록 강해“ 였다. 철두철미한 신비주의자였던 그는 삼위일체 교리(Tertullian 이 처음으로 사용한 성경적인 용어)를 생각하면서 인류의 역사를 3시대로 분류했다 (세대주의자들은 7세대로 분류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구약은 성부시대로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었다고 했고, 예수님의 초림부터 1260일 까지는 “성자 시대” 라고 했고, 기원 1260일부터는 평화롭고 번영하는 “성령시대” 가 도래하기 때문에 교회가 필요 없다고 했다. 過去 함석헌((咸錫憲) ()이나 일본의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 도 그렇게 주장한 사람들이었다. 교회는 구원을 얻은 성도의 유기체이다. 구원을 얻으면 마치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 같이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는 수직적 유기적 관계를 가진다.. 또한 수평적으로 모든 중생한 성도들 간에도 서로 유기적으로 연합되어 있다. 서로 서로 짐을 나누어지며 서로 우는 자와 더불어 울고 즐거워하는 자와 더불어 즐거워한다. 성도가 유기체에서 벗어나면 다른 지체가 고통을 받고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고통을 받는다.

 

Joachim 이 주장하기를 1260년부터 “성령시대” 가 시작된다고 생각했던 근거는 무엇인가? 그는 계시록 11 3절에 나오는 “1260일” 이란 말을 문자 그대로 기원 1260년으로 착각했다. 이 말의 “짝은” 계시록 11:2 의 ‘마흔 두 달“ 과 계시록 11:11 의 ”삼일 반“ 그리고 12:14 의 ”한때와 두 때와 반 때“ 와 더불어 해석해야 한다. 이는 모두 구약 다니엘 9:27 의 “마지막 이레의 절반에 제사가 그치고...”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는 말이다. 다니엘 9장의 70 이레의 마지막 이레의 절반에 제사가 끝나는데 이때가 신약의 시작으로 이레의 반은 공 수학적으로 “3.5” 의 개념이다. 그것은 42 (3년반) 으로 나타낼 수도 있고, 3일반”으로 나타낼 수도 있고 “1260일”로 나타낼 수도 있다. 모두가 “3.5” 의 개념인데 시약시대 전반 즉 주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전체의 기간을 나타낸다. 신약시대 전반에 걸쳐서 사탄의 역사가 (짐승으로 상징되는) 계속하리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것은 “짐승(사단)에게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는 자” 는 화가 있다고 성경은 13:4 14:11에서 분명히 말하는데 13:8에 보면, “창세전에 어린양의 생명책에 록명되지 못한 사람” 들이 짐승에게 경배하게 되지만 반대로 록명된 사람은 하나님이 지켜 주셔서 능히 끝까지 구원해 주신다. 앞서 초두에 언급했지만 다시 말하고 싶은 것은 성경에서 바울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 8:38-39) 라고 말하며 택함 받은 백성의 구원의 확신을 준다.

 

Joachim 의 생각은 근본적으로 잘 못된 것이며 결국 Arle 공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어 파면 당했다. 그는 교회사에서 이단자로 기록되게 되었다. 그 밖에도 한 사람의 그릇된 성경해석에 따른 그릇된 신학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미혹했는가? 19세기 중엽에 영국에서 Plymouth Brethren 운동을 효시로 세대주의를 시작한 John Nelson Darby가 미국의 Cyrus I. Scofield Lews Sperry Chafer 에게 끼친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그 결과 오늘 한국이나 미국이나 세대주의를 신봉하는 신학교와 교수 및 목사들이 전체 개신교 성직자의 대부분을 차지 하고 있지 않은가? 이들은 천년왕국에 관심을 둔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구원과 예루살렘의 회복, 예루살렘의 성전 재건, 등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신앙 생활을 한다. Joachim 은 후에 Arle 공회에서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세대주의자들의 특징 중 하나가 성경의 문자적 해석이다. 성경의 모든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고 앞서 언급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에게 순종하기 않고 범죄하는 나라는 “염병”( 50:32; 26:25 그리고 “악한 짐승 특히 시량” 이 서식하는 처소로 나타낸다 (예레미야 51:37,62; 이사야 34:11,13-14; 예레미야 36:29, 예레미야 50:39). 반면에 말씀에 순종하고 거룩한 생활을 하는 곳에는 항상 “악한 짐승이 없다”는 것으로 나타낸다( 36:29; 이사야 35:9 등 참고). 이런 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가 멸망할 것으로 사나운 짐승을 상징적으로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성취 되었다 ( 34:16). 알렉산더 대왕은 323 BC에 죽었지만 그가 죽은 이유는 인도까지 점령하고 마게도냐로 돌아오는 길에 바벨론에 들려 원형극장을 재건하려다가 열병으로 33세에 요절했다. 바벨론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여러 번 힘주어 말하는 대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파사 나라 고레스왕에게 망했다. 하나님에게 도전하는 사람의 말로는 항상 좋지 않다.

 

계시록의 짐승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을 짐승을 이용하여 상징적으로 그려주고 있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절대로 문자 그대로 해석할 수 없는 책이다. 에스겔 처럼 고도의 묵시문학이다. 묵시문학 형태의 성경은 그 genre 대로 이해해야 한다. 묵시 문학을 다른 성경 책 이를테면 사도행전처럼 해석할 수 없는 일이다. 666에 관해서도 앞서 언급한대로 13장만 생각하지 말고 계시록 전체의 맥락에서 해석해야 한다. 666 이란 숫자는 아무리 길게 계속해도 하나님의 숫자 “7” 에는 결코 절대로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자. 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그것을 강조한 것이다. 계시록의 열쇠는 17:14 한 구절이다. 이 한 구절을 사도 요한은 여러 가지 상징적인 묘사를 통해서 전개해 나가며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자. 과거에 얼마나 많은 세대주의자들이 이상한 교리로서 세상을 미혹했던가? 오늘 날 신사도 운동도 세대주의자들이 주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이 문제는 단지 <베리칩> 그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기에는 기독교를 파괴하려는 사탄의 음모가 숨어 있다. 교회를 파괴하고 성도들을 해치려는 운동이 어찌 베리칩 하나뿐이겠는가? 지금 세상에는 이런 일들이 한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신사도 운동이나 에머징 교회 운동이 그 대표적인 운동일 것이다. 그 외에도 늘 우리로 하여금 성경에서 눈을 외계로 돌리게 하는 UFO 의 출몰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하나. 과연 UFO가 존재하는가? John Ankerberg John Weldon 두 사람은 이단 사상이나 밀교(occult) 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인데 이들에 의하면 모두가 기독교를 파괴하려는 <뉴이에지 운동> 의 일환으로 사탄의 계교라고 단언한다 (Encylopaedia of New Age). Austin, Texas에서 Power of Prophecy Ministries 를 운영하는 Texe Marrs 목사도 그의 책 Dark Secrets of the New Age 라는 책에서 같은 결론을 짓고 있다.

현세의 혼란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리라. 앞으로 온갖 희한한 운동이 더 많이 등장하리라. 모두 주님 재림의 전조(前兆)이다. 주님 재림 전에는 “미혹의 영을 조심하라”고 주님이 감란산 강하 (24)에서 강조하신 것을 한시도 잊지 말자. 오늘의 <베리칩 소동>, <신사도 운동>, 그리고 오는 12 21일로 예정된 지구 종말을 알리는 소위 “마야 칼렌다에 의한 지구 종말론” “에머징 운동” “IHOP 운동” 등을 눈 여겨 보기 바란다. 지금 우리는 고도의 경계심과 분별력이 필요한 때에 살고 있다. 기독교 2000년 역사에 이렇게 말씀이 혼란스런 때는 없었다. 사탄은 말씀을 혼잡하게 하여 어느 것이 진리인지 분간 못하게 하고 있다. 본 선교회는 평신도들의 분별력을 함양(涵養)하여 바른 개혁주의 신앙생활로 주님의 재림의 날까지 충성스럽게 살아가도록 사역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며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고전 15:58) 이 말은 부활신앙에 관하여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하는 말이지만 proof texting 을 떠나서 오늘 때 아닌 <베리칩 소동> 으로 불안에 떨며 성도들 간에 서로 반목시하는 우리들에게도 분명히 해당되는 말이리라. Post Tebebras Lux --

 

    이 글은 본교의 신약신학 교수이시며 튤립 교육 선교회의 대표이신 김명도 박사의 글입니다.

본 글과 관련해서 더 공부하고 싶으신 분은 본교나 튤립선교회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Mathetes Reformed Theological College & Seminary 4545 W. Washington Blvd Suite 202-205 Los Angeles, CA 90016 U, S, A,   /  Tel : (323)932-0788  /  Fax : (323)469-7742
copyright (C) Mathetes Reformed Theological College & Seminary. all rights reserved.  /   E-Mail : mrtsusa@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