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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0-06 05:39
21세기(世紀) 거짓 신학(神學)의 몰락(沒落)
 글쓴이 : 작은자
조회 : 3,311   추천 : 0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 장정(壯丁)만 60만 즉, 부녀자(婦女子)와 노인(老人)들을 합치면 대략 250-300만 명이 갈라지는 홍해를 목격(目擊)했다. 저들은 척박한 땅 팔레스타인 광야(廣野)에서 지키시고(불기둥 구름기둥) 먹이시는 하나님의 역사(役事)(만나와 메추라기)를 체험(體驗)했으며, 이방(異邦) 족속(族屬)과의 싸움에서 기적적(奇蹟的)인 승리(勝利)도 목격했다

그러나 그러한 하나님의 기적(奇籍)들이 있었음에도 저들은 하나님의 언약(言約)을 믿지 못했다. 따라서 믿음은 세상(世上)에 보이는 것으로부터 오는 보이는 것의 결과(結果)가 아니며, 인간(人間)의 노력(勞力)도 아니다. 궁극적(窮極的)으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膳物)이며 하나님의 언약(言約)을 이해(理解)하는 것으로부터 인간의 인격(人格)에서 자발적(自發的)으로 발생(發生)한다. 하나님의 언약(言約)은 관계(關係)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의 실패(失敗)는 결국 저들이 하나님과의 관계(關係)의 실패(失敗)이며 그 원인(原因)은 언약(言約)을 깨달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일찍이 선지자(先知者) 호세아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호 4:6)라고 한탄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언약(言約)을 아는 지식(知識)이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세상(世上)의 모든 역사(歷史)는 그 시작도 끝도 하나님의 수중(手中)에 있다. 그런데 그 역사의 중심(中心)에는 역사를 이루는 3개의 축, 즉 하나님의 관심(觀心)이 있다. 역사(歷史)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관심(觀心)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이였으며, 또 하나님이 이루시는 역사의 중심(中心)에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言約)이 있었고. 그 언약(言約)의 상대(相對)인 하나님의 백성, 즉 하나님의 선택(選擇)하심을 받은 성도(聖徒)가 있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 이유(理由)는 한 가지다. 하나님의 백성은 반드시 하나님의 방법(方法)대로 그 분을 신앙(信仰)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의 모든 신앙적(信仰的) 행위(行爲)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 근본사상(根本査想)이 신학(神學)이다. 따라서 모범적(模範的)인 신학(神學)의 본질(本質)은 하나님을 바로 알아 그분이 말씀하시고 요구(要求)하시는 제(諸) 신앙(信仰)의 법칙(法則)을 제시(提示)하는 이론(理論)이며 신학(神學)의 가치(價値)는 그 방법(方法)과 이론(理論)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합치(合致)한가 하는 것으로 판단(判斷) 받는다.

이 이론(理論)과 방법(方法)이 66권 성경(聖經)에 얼마나 근접(近接)하며 또 얼마나 이탈(離脫)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 신학(神學)의 가치(價値) 판단(判斷)의 기준(基準)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학(神學)은 성경 66권의 중심사상(中心思想)에 가장 근접(近接)한 상태(狀態)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의 이론적(理論的) 제시(提示)이며 주장(主張)이기에 세상(世上)에는 사이비(似而非) 신학(神學)이 존재(存在)한다.

성경(聖經) 중심사상(中心思想)에서 조금 벗어나는 것은 다른 신학(Different Theology)이며, 많이 벗어나는 이론체계(理論體系)는 사이비 신학(Pseudo Theology)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론(理論)이 장황(張皇)하고 그럴 듯해도 그 주장(主張)이 성경(聖經)의 원리(原理)를 벗어나면 그것은 신학(神學)일 수는 있지만, 바른 신학(神學)이 될 수는 없다. 신학(神學)은 하나님의 뜻과 그 분의 생각을 체계적(體系的)으로 제시(提示)하는 인간(人間)의 모든 신앙(信仰)의 방편(方便)이기 때문에 신학(神學)은 중요(重要)하다. 그러므로 바른 신앙(信仰)은 바른 신학(神學)으로 이루어지며, 바른 목회(牧會) 또한 바른 신학(神學)으로만 가능(可能)하다.

신학(神學)은 마치 렌즈(Lens)와 같아서 신학(神學)에 따라 성경(聖經)이 다르게 보이며 다르게 해석(解釋)된다. 한 권의 성경(聖經)에서 다른 해석(解釋)이 나오고 이단(異端)이 나오는 이유(理由) 또한 성경(聖經)을 보는 관점(觀點)이 다르기 때문이다. 성경(聖經)은 하나님과 그 백성간(百姓間)의 언약(言約)이다. 언약(言約)은 관계(關係)이며 관계(官界)는 인격(人格)이고 인격(人格)은 지정의(知情意)의 요소(要素)를 통(通)해서 알고 수용(受容)하고 신뢰(信賴)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성경(聖經)은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단(單) 하나의 길이며 믿음의 길이고 하나님 편에서는 자기(自己) 백성(百姓)에게 하나님을 보이시는 특별계시(特別啓示)에 속한다. 또한 성경은 인간(人間)의 영혼(靈魂)에 양식(糧食)이며 삶의 규범(規範)인바, 성경(聖經)이 모든 신학(神學)의 근간(根幹)이 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인간의 영혼의 양식인 성경을 어떻게 인간에게 적용(適用)시키느냐에 따라서 신학(神學)이 달라지는 것 또한 당연(當然)하다.

66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聖經)을 인간의 삶의 성공(成功)을 추구(追求)하는 방편(方便)이나 도구(道具)로 사용하는 이론체계(理論體系)를 성공신학(成功神學)이라 할 수 있으며, 성경을 인간 삶의 소유(所有)의 증대(增大)와 번영(繁榮)을 위한 도구로 사용할 때 소위 번영신학(繁榮神學)이 될 것이다.

그 전자(前者)의 대표적(代表的)인 예(例)가 삼중 구원 5중 복음(福音)을 주창(主唱)한 소위 여의도 성공신학(成功神學)이다. 인간의 영혼(靈魂)의 양식(糧食)으로 주신 하나님의 입김으로 나온 성경말씀으로 인간의 육신(肉身)의 떡을 만드는 최고(最高)의 기술(技術) 또한 이 여의도 성공신학에 나왔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의 본질(本質)을 벗어난 창세기 6장의 인간 번성이 노아방주 아래 다 침몰하고 말았듯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인간들의 온갖 노력(勞力)은 그것이 높고 또 높아 하늘에 닿았다 할지라도 다 허물어져 버리고 마는 바벨탑에 불과하다.

한국(韓國)에 성공신학(成功神學)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의 비슷한 시기에 미국(美國)에는 번영신학(繁榮神學)의 메카(Mecca)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로버트 슐러(Robert H. Schuller)다. 슐러는 소위 긍정적사고(肯定的思考)의 주창자(主唱者)이다. 성경(聖經)을 인간(人間)의 긍정적(肯定的) 사고(思考) 속에 가두어 놓고 성공(成功)과 실패(失敗), 번영(繁榮)과 퇴락(頹落)이란 괴변(怪辯)으로 막대한 부(富)를 축적(蓄積)했던 장본인(張本人)이다.

“이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행 5:38-39)

세상(世上)에는 고대(古代)로부터 인간(人間)의 소행(所行)을 따라 무너지는 신학(神學)이 있었고 주(主)님의 명령(命令)을 따라 고난(苦難) 받는 신학(神學)이 있었으며, 괴이(怪異)한 변론(辯論)으로 자기(自己)도 멸망(滅亡)하고 남도 망(亡)하게 하는 신학(神學)이 있었다. 어느 신학이 무너지는 신학인가?

목사(牧師)들에게 거대(巨大)한 건물(建物)과 수많은 사람들을 꿈꾸게 만드는 신학(神學), 사람의 탐욕(貪慾)과 부(富)를 정당(正堂)한 축복(祝福)과 복음(福音)이라고 가르치는 신학(神學), 그리스도의 고난(苦難)과 부활(復活)을 통(通)한 현세적(現世的) 안일(安逸)과 이 땅의 위로(慰勞)를 누리도록 가르치는 신학(神學), 쌓아올린 벽돌의 높이만큼이 성공(成功)이라고 가르치는 신학(神學) 등은 다 무너지는 신학(神學)들이다.

이 시대(時代)에 바른 신학교(神學校)는 하나님이 원(願)하시는 방법(方法)으로, 하나님 앞에 봉사(奉仕)하는 봉사자(使命者)를 발굴(發掘)하고 양육(養育)하는 곳이다. 하나님의 방법(方法)으로 하나님의 원(願)하시는 주님의 명령(命令)을 부여잡고 자신(自身)의 연약함과 영적부족(靈的不足)으로 인한 몸부림 속에 고난(苦難)의 가치(價値)를 깨달은 자(者)들의 자원(自願)하는 모임이 진정(眞情)한 이 시대(時代)에 있어야 할 주님의 신학교(神學校)일 것이다. <조직신학 교수 현연섭 박사>


좁은길 11-11-30 07:58
 
켈리포니아에 있는 세계적인 건물인 수정교회건물이
최근 천주교에 팔렸다는데 정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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